한국일보

우리 것을 지키며 살자

2010-05-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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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 존슨은 은퇴를 했고 부인은 아직도 연방 공무원으로 단 둘이 살고 있다. 두 중늙은이 부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무남독녀가 있는데 사위는 고등학교 동기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집간 딸이 아이를 낳지 못해 양자로 데리고 온 두 살짜리 도토리처럼 생긴 애가 있는데 순 조선 종이다
홀트 복지회를 통해 이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일만 이천불이 들었다고 한다.
지난해 개천절 그리고 올해 3.1절에 존슨 부부 집에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아이의 출생지가 한국이며 국경일이라서 태극기를 달았다고 한다. 우리 집에 찾아오는 사람이 태극기가 걸린 옆집을 우리 집인 줄 알고 문을 열었든 해프닝도 있었다. 조국의 얼을 잊지 않겠다고 매년 개천제를 지내면서도 국경일과 고유 명절을 알고도 무관심 내지는 잊어버리고 지냈던 나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잔잔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더욱이 내가 고맙고 부럽고 한편 부끄러운 사실은 순 조선 종인 옆집의 외손자는 이름이 지민이고 성은 구라고 하는 젊은 부부의 말을 듣는 순간 미국에서 녹슨 내 가슴은 호수의 수면에 퍼져 나가는 물결처럼 부끄러움이 일렁이고 있었다. 컴퓨터로 한국에 관한 것을 찾아보고 국경일에서부터 음식이며 풍습을 지민이에게 알려주기 위해 배운다고 한다.
120여 년을 외세에 지배당한 베트남은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단다. 36년을 지배당한 한국은 어떤가? 미국보다 한술 더 뜨는 밸런타인, 귀신의 날, 크리스마스는 철없는 사람들에게 우리 것을 잊게 만들고 우리의 언어는 신문, 방송할 것 없이 70%이상 일본식 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날마다 쓰고 말을 하는 왜식 말의 보기를 들면 신문은 새소식이며 정치는 정사, 친절은 다정, 지폐는 지전, 결혼한 부부는 내외, 감사는 고마움, 국민은 인민, 지구는 땅별, 은하수는 미리내, 미술은 그림, 산맥은 정맥, 우동은 왜국수, 흑인은 토인, 변소는 측간 혈액은 피, 애인은 그림내 정인이며 애정은 정분이다. 그리고 현미는 매조미 쌀, 민초는 서민이며 등산은 입산이다. 유부남, 유부녀, 소년, 소녀, 시간, 약혼, 신랑, 신부 등은 모두 일본식 말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것을 버리고 위와 같은 일본 말을 쓰면서 독도는 우리 것이라고 아우성이다. 나의 실지 경험은 지금도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저녁 초대로 방문한 어느 가정은 6살과 4살의 아이가 둘인데 우리 내외는 자연스럽게 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하지마세요. 영어를 못배워요” 하는 어이없고 민망했던 경험은 잊혀지지 않는 낯 뜨겁고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만큼 생명의 근원과 우주의 원리로 이루어진 철학이 담긴 이름들을 지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부모님들이 지어주신 우리의 이름들은 확실한 유산이 되는데 그렇게 너무 쉽고 단순하게 미국에 살고 있는 편리함을 이유로 이름들을 갈고 버릴 일이 아니다.
옆집 지민이는 한국 이름 그대로 미국 이름도 구지민이다. 이다음 지민이가 원한다면 다시 한국으로 보내겠단다. 부모가 이리 재고 저리 재어 훌륭한 사람되라고 지어준 이름을 우리는 너무 쉽게 버리지는 않는지 살펴 볼일이다. 요한, 다윗, 요셉, 노아, 엘리야, 에스더, 이삭들이 순 조선 종 2살짜리 구지민에게 줄줄이 끌려가고 있는 착각을 느낀다.
나의 신선하고도 충격적인 경험은 다윗과 솔로몬, 노아, 엘리야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도 설명 할 수도 없는 영원한 불가능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민아! 힘차게 크기를 바란다.

이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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