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 두 거장 쇼팽·슈만 탄생 200주년
2010년은 2명의 위대한 낭만주의 음악가 쇼팽과 슈만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모두 피아니스트로서 피아노곡을 많이 썼고, 유명한 여인들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켰으며, 감성적이고 격정적이며 비극적인 생애를 보낸 천재음악가들이라는 점에서 자주 비견되곤 한다.
유명 여인과 스캔들·비극적 죽음 ‘닮은꼴 인생’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쇼팽(Frederic Chopin, 1810~1849)은 자애롭고도 무서운 어머니와 같았던 연상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9년 동안 동거했고, 슈만(Robert Schumann, 1810~ 1856)은 순수하고 헌신적인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얻으려 장인을 상대로 소송마저 벌였을 정도로 당대에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키며 사랑과 예술을 꽃피웠다.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은 200곡에 이르는 피아노곡을 남겼는데 상드와 생활할 때 가장 많은 곡을 지었다고 한다.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었던 쇼팽과 달리 상드는 급진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소설가였으나 쇼팽을 어린아이처럼 자상하게 보살피며 그의 불타는 창작열을 고취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열병에 걸린 연인들처럼 사랑했지만 9년 후 결별했으며 그로부터 1년 후 건강이 악화된 쇼팽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슈만은 일찍이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 꿈을 접은 후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며 한을 풀었다. 그는 좌절된 내면의 고통을 낭만적인 선율로 승화시켰으며 아내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에게 피아노 소품 13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어린이의 정경’을 바쳤다.
두 사람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애절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었으며 이를 막으려는 클라라 아버지와의 치열한 법적 싸움에서 승리해 결혼했다. 그 해 슈만은 클라라에게 바치는 사랑의 노래를 수없이 지었는데 평생 만든 250여곡 가운데 절반은 그 해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쇼팽과 슈만은 모두 병마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쳤다. 쇼팽은 각혈을 하며 앓다가 죽었고, 집안에 정신 병력이 있는 슈만은 신경쇠약으로 자살을 기도한 후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 2년 뒤 거기서 죽음을 맞았다.
쇼팽은 그의 음악이 낭만주의로 묘사되는 것을 싫어했으며 자신은 바흐, 모차르트, 웨버, 벨리니를 잇는 고전주의 음악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음악이 기교면에서 과장되긴 해도 우아함과 완벽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편 슈만은 당대 음악인들로부터 비정통적이며 신중하지 않고 영감과 독창성이 모자란, 자기 탐닉적인 음악이라고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드러냈을 뿐, 실제로는 쇼팽의 음악보다 훨씬 세밀하고 구체적이며 신중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게 후대의 평가다.
<정숙희 기자>
프레데릭 쇼팽
로베르트 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