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있는 그대로 나로 살자

2010-01-1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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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어느 한국 친구에게 “미국에 사는 것이 무엇이 제일 좋으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연이어 “그래서 나는 이런 이유로 한국 사람과 최대한 멀리한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 친구의 대답을 들으면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그가 무슨 이야기를 말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한국 학생이 ‘한인 2세 아이들이 눈치 없게 행동한다’는 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고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눈치가 발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참 눈치를 많이 보고 자란 것 같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고 만약에 자식이 다른 사람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자기 자신의 체면이 뭐가 되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직장에서 상사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서 잘 하는 부하직원을 상사는 좋아한다. 그래서 ‘눈치 빠른 사람,’ ‘눈치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옛 속담에 ‘눈치로 밥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서는 눈치 빠른 것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듯하다.
이처럼 한국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이 스스로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심리가 강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할 때 주변사람과 어긋나는 의견을 표명하지 않으려 하고, 타인의 생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부부 사이에 오랫동안 같이 살았는데도 상대방이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눈치를 많이 보고 타인을 심하게 의식하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일수록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타인의 기분을 잘 맞추어 주고 타인의 기대에 맞게 행동하는 기술은 뛰어나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남의 의견이나 남에게 맞추어 살다 보니 진정 자기의 색깔을 잃어가고 자신의 기쁨보다는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를 두려워한다. 남의 비위를 건드릴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
어린 시절에 선생님이 질문을 할 때 손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눈치를 먼저 살펴보았던 기억이 난다.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한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독특하고 특별한 점을 발견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자기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는 점차 작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마음의 중심을 차지한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하는 시기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 몰라 결정을 미루다가 기회를 잃어버리거나 급하게 결정을 내리게 된다. 비전이나 꿈을 아직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을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맞추어 살다 보니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웠다.
2010년이 새로 시작되었다. 오래 동안 억눌렀던 자기를 풀어주자. 자기내면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솔직하게 들어보자. 자기 내면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기뻐하는지 듣고 반응하자. 눈치와 체면의 올무에서 벗어나 그동안 감춰졌던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면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을 느낄 것이다.

채기병
워싱턴 가정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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