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료개혁 입법 과정

2009-12-19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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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변호사 VA/MD

“소세지 만드는 공정을 본 사람은 소세지를 못 먹는다(Those who have watched how sausage is made cannot eat sausage)”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그 유래는 아마도 사회주의자이며 진보적 저술가로 유명했던 업톤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소설 정글(The Jungle)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본 계급의 노동자들, 특히 미성년 노동자들의 불공평한 착취를 묘사하여 사회주의 혁명 아니면 개혁을 도출하려는 의도에서 쓰여 진 책이었다.
그러나 미국 여론을 흥분시킨 것은 노동 착취가 아니라 소세지 공장의 악취나는 적나라한 묘사, 예를 들면 공장 바닥에 깔려 있는 소, 돼지의 피와 범벅이 되어 있는 톱밥 쓰레기와 아울러 죽은 쥐들마저도 소세지 기계에 쓸어 넣는 장면 등이었기 때문에 혁명은 폭발되지 않았어도 식품 생산 과정을 감독하는 연방 식약품청이 생기도록 만들었다는 일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제 며칠 있으면 간발의 차이로 연방 상원에서 통과되거나 부결될 의료 개혁안의 입법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소세지에 대한 속담이 연상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경제 회생 못지않게 중시했던 의료 개혁 공약은 꼭 금년 안에 이룩해야 될 것이라고 장담했고 상하 양원의 다수당이 민주당인 여건에서 그럴 듯하게 보였던 것도 잠간이었을 뿐 까닥하다가는 내년으로 미루어지거나 의료개혁을 힐러리 여사와 함께 열심히 추진하다가 포기하게 된 클린턴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 헌법기관 중 가장 비민주적인 상원 때문이다. 인구 비례에다가 과반수 찬성이면 입법이 되는 하원 435명과는 달리 인구가 3,600만이 넘는 캘리포니아주나 인구가 50만도 못되는 와이오밍주도 상원 의원 수는 두 명씩이라서 상원 정원이 100명이다. 게다가 헌법에는 나와 있지도 않는 소수당의 의사 진행방해 발언권(filibuster)을 극복하는 데는 과반수 즉 51이 아니라 60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현재의 분포가 민주당이나 민주당 편인 무소속이 60명인 상황에서 단 한 명만 공화당 편을 들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없어 의료 개혁 법안을 상정시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공화당이 우세인 지역 출신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재선 가능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정치인들이라서 자기 주 선거민들이 반대를 하는 내용을 의료 개혁 법안에서 빼놓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네브라스카 주 출신 벤 넬슨(민주) 의원은 상원 법안 가운데서 연방 정부돈이 낙태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넣을 것을 고집하고 있어 만약 의료 개혁 법안이 자기 주장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면 부표를 던질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고어 대선 후보자의 부통령 후보였지만 지금은 무소속인 조 리버만 의원은 연방정부나 공공 기관의 보험업계 참여를 반대할 뿐 아니라 55세 이상이면 메디케어를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개정안조차 반대하기 때문에 그의 표를 민주당 쪽에 계속 묶어두기 위해서는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 총무가 회유와 양보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하원에서 이미 통과된 의료 개혁 법안에는 공공 기관의 보험 제공 옵션이 포함되어 있지만 상원 법안에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 상하 양원들 중 진보적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대로 불평과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2008년 대선 때 민주당 전당위원장을 지냈으며 의사 출신이기도 한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현 상원의 의료 개혁 법안은 미국의 장래에 유익보다는 해를 끼치게 될 것이라면서 자기가 상원 의원이라면 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공화당의 거의 일사불란한 반대 때문만이 아니라 민주당 내의 골육상쟁(骨肉相爭) 때문에 오바마의 최대 공약이 실패될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민을 망라하는 건강 보험이 없는 미국의 모순이 계속된다면 의료개혁 입법 과정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이 점점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치인들을 매도하는 현상이 더욱 더 심각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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