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절에 느끼는 미국

2009-11-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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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섭 융자인, 메릴랜드

미국은 가능성의 나라다. 아직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 왔다. 그러면 미국의 가능성을 알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우리의 이민 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미국의 가능성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미국은 정말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그런데 그 많은 가능성들이 모두 하나의 뿌리에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모든 가능성은 책임이란 터전 위에서 성장하는 것이다”라고 로버트 슐러는 말했다.
“우리가 가진 책임의 터전 위에 21세기로 이어지는 위대한 다리를 건설합시다”라고 빌 클린턴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말했다. 두 분 모두 “On the foundation of responsibility”라고 똑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슐러는 LA의 크리스털 교회에서 클린턴은 워싱턴의 의사당 앞에서 그것이 다를 뿐이다. 신앙도 정치도 책임성을 강조하는 데에는 한 목소리다. 그것이 미국이다. 미국의 가능성은 책임이라는 터전 위에서 성장하며 결실하는 것이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가능성이란 하나의 씨앗이다. 결실이 아니다. 심고 키워야 결실하는 것이 씨앗의 생리다. 그것을 심고 키워줄 땅이 책임성이라는 땅이라는 말이다. 권리의식을 가지고 일하면 성공의 가능성이 작아진다. 현명한 지도자 일수록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빌 게이츠의 기업 운영방침이 바로 그것이다. 규칙(rule)은 권위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곳에 회사의 규칙이 없다. 종업원들의 자율이 있을 뿐이다. 자율은 책임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모든 책임을 종업원이 진다는 뜻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종업원의 책임 위에 세워진 회사이다. 그곳에는 계급이 없다. 대신 직책이 있을 뿐이다. 직책은 권리가 아니며 계급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책임인 것이다. 요즘에는 그 ‘책임’ 앞에 돕는(helping)이란 단어가 붙어 다닌다. 어디엘 가도 ‘무얼 도와드릴까요’라고 질문한다. 지금 미국에서 감사합니다(thank you)처럼 많이 쓰이는 단어가 돕는다(help)이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직책을 권리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미국인들은 그것을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 그저 각자가 자기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미국의 가능성이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많은 나라의 가능성은 권리가 키워주는데 미국의 가능성은 책임성 위에서 성장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가능성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그것을 키우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미국의 가능성을 키우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이 감사다. 채찍이 아니요 감사다. 미국은 감사의 가치를 잘 아는 나라다. 그것이 많은 가능성을 키우고 결실케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그것은 청교도들이 플리머스에 상륙하여 그곳 원주민들과의 사이에서 시작된 생활이다. 그것이 ‘청교도+이방인=위대한 미국’의 공식을 가능케 했다.
나는 몇 년 전에 추수감사절을 플리머스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곳은 감사절의 본 고장이다. 감사절의 본고장에서 감사절 기념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날 마크 목사님의 말씀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것은 미국의 명절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의 생일이며 미국을 키운 힘과 터전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감사를 느끼며 호흡하고 있습니다.” 구구절절이 가슴에 사무치는 감동이었다. 미국을 가능성의 나라로 본다면 감사가 그것을 키우며 결실케 했다는 말씀이었다.
11월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이제 우리도 감사를 피부로 느끼며 호흡하자. 미국의 가능성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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