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잎새처럼
2009-11-25 (수) 12:00:00
오늘도 손자들을 베이비싯 하러 새벽에 애나폴리스로 향한다. 찬양을 들으며 새벽 여명을 바라보면 또 하루의 시작이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차가운 새벽공기는 그래도 정신을 맑게 해준다. 운전하며 하늘의 구름을 바라볼 때는 이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도 한 조각의 구름으로 방황하며 살지 않았는가 생각에 잠겨본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소망을 갖는다. 그래서 소망을 열심히 추구하며 이루고 나면 또 다른 소망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소망은 절대적도 아니며 불변적일수도 없을 것이다.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소박하게 산다고 다짐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인생이다.
짧지 않은 세월 역경 속에 잃은 것도 많지만 생각보다는 분에 넘치게 받는 것도 잊고 살았으니 부끄러움뿐이다.
어떤 때는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무아의 경지에 빠지기도 하며 때로는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삶의 즐거움, 행복한 충족감에 감사를 느끼며 타인의 고통, 슬픔, 불행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것들도 나이 들고 나서야 이제야 깨닫는 것을 보면 세월의 연륜이 주는 삶의 향기인 듯하다.
비록 보잘것 없는 존재인 인간일지라도 우리에겐 영혼(정신)이 있다.
이것은 신(神)이 인간에게 부여한 최대의 선물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즈음은 지척에 깔려있는 낙엽, 아름다운 만추의 모습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 밖에도 서늘한 새벽공기, 유난히 푸른 하늘, 끝없는 바닷가 등 주변에는 값진 선물이 많다. 다만 늘 곁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인간이 무엇이 된다는 것은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길인데 때로는 나도 세속에 물들어 순수함을 잃지 않았는가 반성할 때가 많아진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다. 기쁨과 행복한 삶만이 감사가 아니라 슬픔과 고통도 감사의 의미로 받아들여야겠다.
감사의 조건은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찾아야 한다. 자연에서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행복과 불행이 쌍곡선의 교차로 얻은 것이 있으면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그래서 기쁨만이 감사가 아니고 아픔도 감사다. 역경과 불행한 삶은 바로 살아있다는 행복이기에 얼마나 감사한일인가. 나무들은 그 많은 잎새를 돌려주고도 마음을 비우고 나목(裸木)으로 당당하게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
자연의 이치는 삶의 이치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인간이 어떻게 감사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것을 일깨워 주는 계절이다. 이젠 나도 가을 잎새처럼 곱게 늙으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