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마지막 잎새
2009-11-06 (금) 12:00:00
포레스트 오크 타워로 이주한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7층 창문까지 날아오는 낙엽을 바라보자니 가을이면 생각나는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11월에 들어서면서 폐렴으로 앓고 있는 존즈는 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은 채 창밖의 잎만 세고 있었다. 그리고 간호해 주는 친구 수우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밑층에 사는 화가인 베어만 노인은 40년 동안을 그림을 그리며 살았지만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즈의 망상을 이야기하고 정말로 잎새와 함께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 지나도 잎새는 여전히 붙어 있었다.
존즈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사는 베어만 노인도 폐렴으로 앓고 있다는 말을 해준다. 그날 오후에 수우는 존즈에게 베어만 노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며 담장에 잎새를 그렸다는 것을 말해준다.
누구나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마지막 잎새”는 무엇을 뜻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마지막 잎새는 희망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폐렴에 걸린 존시를 위해 그에게 희망을 주기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추운 밤에 벽돌 담벼락에 담쟁이 잎새를 그려놓고 자신은 폐렴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보고 싶으면 늘 노르백 묘지를 찾아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나지만 가을이면 더 생각이 난다. 지금까지 나는 누구를 위해 담쟁이 잎새 하나 그려본 적 있는가. 그런데도 어느 집사님은 “장로님과 하늘계신 김 권사님이 부부로 60년 이상 사신 것은 주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너무 슬퍼 마시고 장로님의 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도록 모임에도 가시고 하루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편한 마음으로 사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희망이 넘치는 편지가 왔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선영의 글, “사랑하는 아저씨, 눈물로 그리워하며,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니겠어요? 그 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 뵈오며 우리 함께 하루하루 살아가요.”
역시 나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글인 줄 알면서도 자꾸 떨어지는 잎새가 나를 괴롭히곤 한다. 더구나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나는 알고 있지만... 창가에 있는 담쟁이 넝쿨만을 의지하며 바라보고 있었던 나. 그리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던 나. 누군가 나를 위해 희망과 용기를 주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아 내가 바보였구나”하고 탄식하고 있다.
그리고 희망이 내게도 잎새와 함께 워싱턴에 도착하고 있다
안국두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