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세종시 문제를 지켜보면서

2009-11-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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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평일 버지니아

요즈음 한국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미국에서는 의료개혁법 문제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두 패로 갈라져서 여간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민주사회란 본시 백가쟁명의 소리로 시끄러운 사회이니 크게 걱정하고 우려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나라가 모두 의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민주국가임에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처해 나가는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에서는 시간을 두고 상대방을 대화로 설득하고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도 하면서 다른 의견들을 양보와 타협이라는 협상을 통해서 하나의 수정된 법안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자기 의견을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수정을 하게 되면 마치 끝장이라도 나는 것처럼 우격다짐으로 자기 주장만을 밀어 붙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미국정치는 회색논리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의 상생정치이요, 한국정치는 흑백논리에 입각한 물러서면 다 죽는다는 생사결단의 전쟁처럼 생각 된다.
나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를 두고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를 평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도 부족하고, 또한 찬반을 논할 입장에 서있지 않다. 다만 이번 세종시 문제에 대한 여야의 극한 대립을 지켜보면서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한번 해 보고 싶다.
수년전에 미국을 방문한 개인적 지인인 한국대선후보였던 ‘ㄴ’의원에게 사석에서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정치는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것으로 햇볕이 너무 뜨거울 때는 태양을 가려서 국민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물이 부족한 곳에는 비를 내려서 고갈을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라고 나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해 주어서 많은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 말처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인간들은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서는 살아 갈 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 한다. 그런면에서 인류의 성현들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공자는 정치란 국가의 경제와 국방, 그리고 백성들의 믿음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며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정명론(正名論)”을 펼쳤다.
한편 노자는 이상적인 정치란 백성들이 지배자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하지유지(下知有之)”의 자유롭고 편안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공자는 국민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경제 문제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 경제학을 옹호하는 미국식 표현으로는 진보적(liberal)이요, 한국식 표현으로는 ‘극좌파 거두’이다. 노자는 정부가 경제에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되며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어야 한다는 아담스미스의 경제 이론을 선호하는 미국식 표현으로는 보수적(conservative)이요, 한국식 표현으로는 ‘극우파 거두’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경제대통령’이라는 말이 가장 효과적인 선거구호이며 매력적인 선거공약이 되어 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불황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를 구해 달라고 한국국민들이 압도적인 표로 선출한 소위 ‘경제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두고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일차적 관심은 국민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일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정치와 경제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소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란 국민다수의 행복을 극대화 시키는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경제, 특히 기업의 일차적 목적은 능률과 효율을 통해서 이윤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경제적인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상충할 때가 많이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상적인 정책들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아주 비효율적이고 비능률적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아주 능률적이고 효율적인 정책이 정치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 때도 있다.
결국 정치와 경제도 타협과 조정을 통해서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시 문제는 지역경제문제를 떠나서 앞으로 다가 올 한국 천년역사를 좌우하는 국가적 대사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 성급하게 당장의 정치적 논리나 경제적 논리로만 보지 말고 천년한국을 내다보는 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서 훌륭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냈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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