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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 성공하는 리더의 조건 (1) 코칭 리더가 되라

2009-10-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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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촌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한국은 불황의 터널에서 제일 먼저 벗어날 우등 국가가 되리라고 예상하고 있긴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해묵은 이념대립과 국론의 분열 때문에 사회적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런 때에 대중이 애타게 고대하는것은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의 등장이다. 리더십의 개념과 역할은 시대가 안고 있는 꿈과 비전을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1950-60대에는 카리스마 리더십, 1970-80년대에는 변화적 리더십, 1990년대 이후로는 통합적 리더십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코칭 리더십(coaching leadership)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김연아 선수가 지금 세계피겨부문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본인의 열심 있는 훈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코칭 리더를 잘 만났기 때문이다. 반면에 김연아 선수의 경쟁자인 이사다 마오의 저조한 성적은 코치를 잘못 만난 것이 중요 원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작년에 성적이 좋지 않아 은퇴 직전까지 몰렸던 박찬호 선수도 필리스의 찰리 매뉴얼 감독을 잘 만난 덕에 지금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반면에 베이징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인 박태환 선수가 지난여름 로마대회에서 예선부터 탈락한 것은 전담 코치와의 불협화음과 연습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지적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탁월하게 되려면 탁월한 리더를 잘 만나야 한다. 그러면 탁월한 리더십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옛날처럼 리더의 영향력만 행사하려는 가부장적인 리더십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리더가 팔로워(follower)의 성장과 발전에 필요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따뜻한 격려자가 되어주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멘토링 해주는 코칭 리더십이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오늘날의 리더십의 기능이 다양해졌다는 애기다. 다시 말하면 코칭 리더십이란 사람들을 격려하고 차원 높은 동기를 부여해서 그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잠재능력을 끌어내주고, 약점을 보완하여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통합 리더십(total leadership)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코칭 리더십은 리더와 팔로워가 서로 믿고 신뢰하는 “긍정적 인간관계”를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 없이는 코칭 리더십은 성공할 수 없다.

리더십의 대가인 워렌 베니스는 이렇게 말했다. “코칭 리더십은 미래의 지도자들을 위한 최고의 모델이 될 것이다. 코칭 리더는 가르치고, 멘토링 하고, 능력을 부여한다. 나는 리더십은 학습될 수 있으며 탁월한 코칭 리더들은 학습이 더 잘 이루어지도록 촉진한다고 믿는다. 미래의 지도자는 거장이나 명지휘자나 사령관이 아닌 코칭 리더가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코칭 리더십을 배워야 할까. 코칭 리더십의 대가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갈릴리 변방의 촌사람들 12명을 불러 모아 3년 반 동안 코칭하고 가르쳐서 세계적인 인물로 키웠다. 그러므로 탁월한 코칭 리더가 되고 싶다면 예수님에게서 배우고 그 분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라. 그러면 당신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탁월한 코칭 리더가 될 수 있다.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할 코칭 리더십의 첫 번째 요소는 “공감”이다. 공감(empathy)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또한 긍정적인 인간관계가 공감의 힘에서 나온다.수준 높은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탁월한 인물이 일어난다. 한번은 예수님이 여리고에 들어갔다가 로마의 비호아래 세무공무원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번 삭개오를 만났다. 모두가 그를 매국노라고 비난하고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을 때 예수님만은 그를 찾아가 인정해 주고 친구처럼 대했다. 이때 삭개오는 감동을 받았고 그의 삶의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공감의 힘이다.

공감이 잘 이루어지려면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한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yes”라고 말 할 수 있는 은혜와 포용의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억압된 인격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조건적인 “yes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대 신비주의 신학자 마틴 부버는 높은 수준의 공감이 이루어지는 관계를 “나와 너”의 관계라고 했다. 다니얼 골만은 “높은 SQ(사회지능지수)”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의 친
구”, “나의 가족”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과거의 상처받은 인생을 정화시키고 회복하기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먼저 입은 우리는 그분처럼 코칭 리더의 삶을 살라는 책임을 부여 받았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든지 공감(共感)받음으로 변화한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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