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민권자가 졸(卒)입니까

2009-10-10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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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홍 전 베트남참전전우회장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엔 온 식구가 종로구 동숭동이나 장충동 반공센터에서 이민 교육과 반공교육을 받으며 미국에도 간첩이 득실거리고 납치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다섯 식구가 손에 몇 백 달러 달랑 쥐고 김포공항을 떠난 것이 엊그제 같다.
차타고 가다 반대편에 한국 사람이 언뜻 스친 것 같으면 쫓아가서 반갑다고 하던 때가 아직도 머리속에 맴도는 것 같은데 이젠 미국 땅에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의 권익을 따지는가. 어차피 영주권자도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다.
고국에서 투표권을 준다고 하니 아니 영주권만으로도 불편한 것이 없고 언제든 이곳이 싫으면 떠나면 되는데 시민권이 있기 때문에 재범이나 승준이는 아주 나쁜 동포가 돼버렸지 않은가. 4년 전에 철없던 때에 한 말을 문제 삼아 미국에 사는 시민권자들을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했던가.
동포들은 삼키고 뱉어야 할 그런 존재가 아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밑천이며 크나큰 재산인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한 초석이었으며 땀방울이었던 것을 왜 모르는가.
미국에 오는 정치인들은 우리들을 선구자인양 미사여구를 늘어놓다가도 임무가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느냐 식으로 헛소리하기 일쑤다.
재범이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대처했기에 이 지경이 되었는가. 나는 재범이라는 청년을 알지도 못하고 그의 노래초자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그의 나이가 22세이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그의 부모 마음을 유추해 볼 뿐이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의 숫자는 2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 인구 200만 이하인 나라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 교민들이 이루어 놓은 부와 집과 땅은 넓은 의미의 한민족인 것이다.
우리들이 삼성 TV 사고, LG 핸드폰 쓰고, 한국에서 오는 식품 사 먹으면 결론적으로 한국으로 가는 것 아닌가. 고국의 정치인들이여 높게 멀리 보아라. 언제인가는 우리에게 주몽이나 징기스칸 같은 인물이 태어나고 고구려 시대에 한 것처럼 영토 문제 가지고 중국과 다툼을 벌일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때에는 국내에 있는 국민보다 해외에 있는 동포들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미국에 있는 동포들의 피 속에도 한국인의 유전자는 쉬지 않고 흐를 터, 배신자인양 차별두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고위층들처럼 군대를 기피했는가. 한국 떠나기 전에 납세의 의무를 소홀히 했는가.
전쟁터에 갖다오고 예비군 훈련받고 민방위 훈련까지 받아 온 성실한 국민이었다.
부모가 있고 매일 밤 꾸는 꿈의 진원지인 그 곳을 시민권 취득했다고 차별하지 말아라. 한국처럼 좁은 땅덩어리에서 땅을 넓히며 살아가는 것도 한민족에겐 좋은 일이며 애국하는 길 아니겠는가. 투표 이후의 영주권자와 시민권자의 이원화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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