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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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칼럼/ “노벨상“

2009-10-1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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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의 계절 10월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생리 의학을 필두로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 여섯 분야의 노벨상(The Nobel Prize) 수상자가 발표되기 시작한다. 마치 지구촌 안에 있는 인류의 일 년의 삶을 결산이나 하듯이 말이다. 노벨상은 스웨덴 출생의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한 개인의 유언으로 태동되었다. 183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노벨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재기(再起)를 위해 러시아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일찍이 조국을 떠나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다양한 공부를 했고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를 거부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광산용 폭탄을 연구하다가 1866년에 우연히 니트로글리세린액을 규조토에 흡수시켜 만든 다이너마이트의 발명 때문이다. 그가 만든 다이너마이트는 19세기의 대 토목사업 중 하나인 수에즈 운하를 위시하여 각국의 철도 건설과 항만, 다리, 도로 공사에 이용되었고 그는 곧 세계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노벨은 1896년 12월 10일에 사망하면서 전 재산 3,100만 스웨덴 크로네(당시 달러 가치로 약 9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거액)를 노벨상 기금으로 남겼다. 그가 번 전 재산을 노벨상 기금으로 남긴 동기는 사랑하는 동생 루드비그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의 동생이 프랑스에서 갑자기 사망했을 때 신문에 “죽음을 팔아 돈을 번 거부, 알프래드 노벨 죽다”라는 오보
가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이 기사를 본 노벨은 자신의 삶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곧 노벨상을 제정하였다. 그가 남긴 유언은 “내가 남긴 재산 전 재산을 현금화하여 노벨상 기금을 조성 할 것이며, 이 기금의 운영에서 나오는 이자를 가지고 매 해마다 인류에게 최대의 혜택을 제공한 인물에게 다섯 개 분야의 상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과는 관계가 없는 상이지만 스웨덴 국립은행의 창립 300주년 기념으로 1969년에 새로 추가되었다. 그래서 노벨상이 전부 여섯 분야가 되었다.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은 노벨이 사망한지 5주년이 되는 1901년 12월 10일에 거행되었고, 이후로도 노벨상 시상식은 매년 같은 날 스톡홀름에서 거행되고 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을 때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유대인의 높은 노벨상 점유율이다.


지금까지 106회의 노벨상이 집행 되었는데 유대인은 그중 약 22%-25%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인의 세계 전체 인구 비율이 0.2% 밖에 안 되는 소수민족
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가져간 노벨상 중 75%이상이 물리, 화학, 생리 의학과 같은 기
초과학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물리학(Jewish physics)라는 별명까지 나왔다. 유대인의 세계화 전략이 기초 과학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노벨상 수상을 꿈꾸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세계인구 중 0.2% 밖에 안 되는 소수민족 유대인이 노벨상을 22%이상 차지하는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먼저 모든 역경과 시련을 이기게 만든 성경과 탈무드의 힘에서 나온다. 그 다음에는 대학교나 연구소의 유대인 교수와 유대인 학생 비율에서 나온다.

실제의 예를 들어보자. 지금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유대인 교수 비율은 35%이고 유대인 학생은 25%이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 경험이 있는 유대인 교수들은 자연히 유대인 학생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아 그들을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이끌어 주고 신앙의 멘토 역할도 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 우리는 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도 대학이나 연구 기관의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로 들어가 그 밑에서 겸손하게 배우는 도제 정신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노벨상은 노벨상 위원회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개척자들을 10년 이상 세밀히 관찰한 후에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과서에 있는 공식만 외우고 다니는 암기식 공부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의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지의 분야를 적어도 10년 이상 끈질기게 파고들어 연구한 업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오래 전부터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을 고대하고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도 유대인처럼 성경과 예술과 기초 인문학을 귀중히 여기고 10년의 법칙을 존중하고 인류 봉사의 사명을 지녀야 할 것이다. 단순히 명예나 자존심을 충족하기 위해 노벨상을 꿈꾸고 있다면 그 꿈에서 깨어나라. 우리에게 순수한 열정만 보완된다면 노벨상의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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