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네

2009-10-0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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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희 중앙결혼정보센터

대학 2학년 9월 어느 날 가까운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 이 친구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글쎄 그 남학생 있잖아? 군대 갔다 와서 복교한 사람 말이야. 어저께는 학교에서 나오면서 땅콩 장사 앞에 와서는 땅콩 10원어치만 사달라고 하잖니? 그래서 나는 땅콩을 먹으면 얼굴에 무엇이 나서 땅콩을 안 먹는다고 했더니 그 남학생이 깜짝 놀라며 ‘며칠 전에 땅콩을 20원 어치 사서 같이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안잖아요?’ 하며 내 얼굴을 쳐다보는데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웃으며 그냥 왔단다. 아마 그날은 그 학생 호주머니에 10원도 없었나 보다 생각했지.”
다음 날 그 학생은 그 곳에서 땅콩 50원 어치를 사더니 세 봉지는 나를 주고 두 봉지는 자기가 먹으며 버스를 타러 가는데 한참 가다가 거의 먹었을 때쯤 나를 보고 “오늘은 얼굴에 무엇 나는 거 걱정 안돼요”하고 묻더라는 것이다. “땅콩이 하도 맛있어서 그걸 잊어먹었네요” 하며 웃어넘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태우고 생각해 보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또 말을 계속 이어갔다. 강의 시간에 늦으면 남학생들의 큰 머리 때문에 칠판 글씨 보기가 힘 드는데 요즘은 그 남학생이 제일 먼저 와서 손수건을 깔아 놓고 앞에 자리를 잡아주니 강의 듣기가 편안해서 좋단다. 그리고 어쩌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혹시 비를 맞고 오지는 않나 해서 강의실 앞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더란다. 무거운 책, 실습 도구, 가운까지 들고 힘들어 하는 나에게 공주님 이제 오십니까? 반갑게 인사하며 잘 받아서 교실까지 운반해 주고 버스 정류장까지 들어다준다고 한다. 여기까지 듣던 내가 “너 혹시 둘이서 연애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펄쩍 뛰는 것 아닌가. 그런 감정은 전혀 없고 그 남학생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 후에도 자주 만나 그들의 관계를 물어보면 그저 그런 친구 사이의 일들인 것처럼 말했다. 공부도 같이 하고 시간 나면 극장도 같이 가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한다.
일 년 쯤 지나서일까? 그 친구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혼자 도서관에 앉아 있으려면 허전한 마음이 들고 혼자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가려면 외로움까지 느낀다는 것이었다. 같이 다니던 친구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졸업 후 결혼을 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며 40여년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 때 그것들이 사랑이었는데 왜 깊이 느끼지 못했을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느끼는 첫 출발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착하고 아름다운 것이요, 알파요 오메가다. 예수님은 사랑을, 부처님은 대자대비를 외쳤다. 우리는 여기에 순응해야 한다. 사랑은 인간과 인간을 맺어 연결시켜 주는 힘이요 원천이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진리다. 땅콩 10원어치에 고개를 돌렸다면, 옆자리에 손수건을 깔아 놓고 기다림이 없었다면 이 두 사람의 사랑이 현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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