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한 설교자

2009-10-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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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목사는 목회자이고 설교자이다. 목회하는 것은 설교하는 것이며 설교하는 것은 목회하는 것이다. 목사에게 설교가 얼마나 중요한 가는 구태여 설명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설교는 강연도 아니며, 연설도 아니며, 교장선생님의 훈화도 아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연설가가 아니며 웅변가도 아니다. 설교자는 설교자일 뿐이다. 설교자는 사람이 세우거나 사람이 만들지 않는다. 설교자는 위로부터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기에 위의 말을 해야 하며, 위에서 하라고 하는 말을 전달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한다.
설교자로서 설교가 얼마나 어려운가는 설교자만이 아는 고충이다. 설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데도 설교할 때마다 늘 긴장하는 이유는 마치 타석에 들어서는 야구선수의 심정일 것이다. 야구선수야 자기의 터득한 기술과 연습으로 투수의 공을 친다고 하지만 설교는 그렇지 않다. 설교는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어렵다. 자기의 말을 하면 설령 유창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설교가 되지 않기에 강단에 내려오게 될 때 그 허전함과 미안함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명한 로이드 죤스 목사(Martyn Lloyd-Jones)도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한 것을 보면 그 어느 설교자도 설교에 대한 부담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목사요 설교자이다. 목사는 의사나 변호사와 같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꼭 목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부할 수 없었던 전권적인 하늘의 부르심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목사는 성직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직은 거룩한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목사가 되는 것이다. 성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땅의 일을 위해서 부름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목사로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을 전하도록 부른 것이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되겠느냐라고 물으면 분명하게 ‘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목사가 갖는 축복 때문이다. 그 축복은 세례요한의 말처럼 목사는 단지 전하는 소리일 뿐 참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설교는 자기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르시고 보내신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 어떤 말 한마디도 자기의 말씀이 아니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설교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때로는 설교를 잘하는 설교자, 설교를 못하는 설교자라는 구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설교자는 잘하느냐 못하느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했느냐 바로 하지 못했느냐를 말해야 한다.
설교자는 늘 발전하고 성숙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요즘 나는 행복하다.
행복한 이유는 설교자로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하나님을 알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찾고 발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나는 하나님을 듣고 싶고, 하나님을 보고 싶고, 하나님을 만지고 싶다. 설교를 할 때마다 내가 만난 그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아니 행복해야 한다. 그것이 축복이고 즐거움이다. 이것이 설교자의 은총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는 즐거움이 없다면 목사가 누릴 어떤 행복도 세상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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