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 여미며

2009-09-25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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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현자 /워싱턴 문인회

주문받은 손님의 조끼에 단추를 달다
왈칵 목이 멘다.
핏줄이 파랗게 도드라진 풀기마른 손으로
주머니에서 단추를 찾아 내미는 노인
천천히 힘없는 모습도, 움푹한 볼도
생전의 아버지를 닮았다.
즐겨 입으시던 조끼마저 닮았다.
낯선 노인의 옷에서 아버지냄새가 날건 무엇인가!
살갗 밑 혈관처럼 그리움이,
가슴 바로 아래 묻혀있었던 것일까
찔리자마자 바로 터져 흐르고 흐르는 것이.

노인은 단추를 한 개만 부탁했지만 난,
헐거워진 단추를 모두 떼어 다시 달며 헤아려본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처럼 내 아버지도
조끼주머니처럼 이곳저곳 입 벌린
가족들의 채움을 위해
자신의 욕망쯤 안으로 꼭꼭 여미며 살았으리라.
풀어헤쳐지려 할 때마다
단단히 여미며 살았으리라.
그러다
영면의 길엔
품 넓은 삼베옷 대신입고
그렇게 가셨으리라.
주머니도, 단추도 없는 삼베옷 대신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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