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되는 말
2009-09-17 (목) 12:00:00
이것을 가리켜서 언어도단이라고 한다.
지난 8월에 세상과 만난 분들을 위한 생일잔치가 있었다. 평소 때 나는 간단히 우유, 빵 따위로 세상을 지낼 힘을 보충한다. 참 이틀에 한 번, 어느 교회에서 제공하는 한식을 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여간 푸짐한 한국 먹거리로 점심을 해결했다.
날은 저물었다. 찾아오는 이가 없었어도 하루를 견디어 냈음을 감사하며 손을 닦는데, 화재경보가 정신없이 울린다. 복도로 나서니 뭔가를 태운 냄새가 자욱하다.
화재경보기만큼이나 예민한 내 후각! 너무 예민해서 피곤하다 생각하며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영어로 말해야 할 때가 별로 없다. 사시는 분의 70% 이상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경보기 소리가 워낙 우렁찬지라 소리가 내 정신을 흔드는 통에 나갔다. 난 유유상종이란 한문숙어의 뜻을 지금의 아파트에 온 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가니까 초록은 동색이라는 듯 끼리끼리이다.
나는 영어가 서투니까, 당연히 한국인 쪽에 섞였다. 어느 분이 짜증스럽게 말씀하신다. ‘시끄러워서 나오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한국말로 한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난 생각했다. 사람이 입을 열어 내 뱉는다고 전부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 같이 살자니 관망자의 위치에 놓여져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기회를 얻게 되니 참 좋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분별하여 듣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말도 생각해서 그 말을 되새김질한 것을 자꾸 생각해봐도 나는 정신이 살아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다.
확실히 살아 있는 정신이 나로 하여금 사람들이 말이 안 되는 말을 할지라도 들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언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원만한 대인 관계를 가질 수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값없고 무시될 말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동안 나는 말소리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 마디 말이라도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하는 말이 수억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말을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김부순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