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공립학교들이 일제히 입학식을 실시한 9월 7일, 리틀넥의 MS 67을 졸업하고 맨하탄 헌터중학교에 입학한 김재은(12)양도 다른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다소 설레고 상기된 표정이었다. 뉴욕에서 가장 뛰어난 초등학생들만이 들어간다는 명망 있는 헌터중학교의 학생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6년 전 미국에 온 직후부터 김재은 양은 자신이 헌터중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뉴욕에 갓 도착한 6살 어린이로서 뉴욕 학교들의 특징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혀 없었지만, 단지 원래 미국에 살고 있던 이모가 “헌터중학교가 가장 좋은 학교”라고 말 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재은양은 다방면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입학 기회가 주어지는 4학년 때의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얻은 후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루었다.
극성스러울 정도로 높은 한국의 조기 교육열을 감안하면 이미 한국의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꽤 공부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실제로 미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ABC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지만 재은양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과목이 바로 에세이다. 재은양은 지난 5월 21일 열린 ‘리틀넥 더글라스톤 메모리얼데이 아트 앤 에세이 컨테스트’에서 수상하며 이 대회에서 세 번째 상을 받는 기록을 남겼다. 재은양은 올해 대회에서 ‘자유’를 주제로 한 글을 발표해 프랭크 파다반 주 하원의원으로부터 메달을 받았다.
재은양의 예술에 대한 재능역시 무시할 수 없다. 5년 전부터 바이얼린을 배우기 시작해 지금은 뉴욕리틀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퍼스트 바이얼리니스트로서 연주 하게 된다. 5살부터 시작한 피아노도 수준급이고 그림 실력도 우수한 편이다.6년 전 올해의 목표를 정했듯이 재은양의 6년 후 목표도 이미 확실히 정해져 있다. 의대에 진학해 나중에 소아과 전문의가 되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재은양에게 의사라는 목표는 5살 이후에 단 한번도 변해본 적이 없는 확고한 것이었다. 직업이 주는 안정성과 사회적인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너무 오랫동안 아파본 경험이 있어서다.
재은양은 어린 시절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2년이 넘게 치료를 받았다. 조직검사며 초음파 검사, 그리고 매일 먹어야 하는 약 등 힘든 2년이었다. 그때 자신을 돌봐주고 치료해주는 의사들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과 경외심을 갖게 됐고, 자신도 꼭 아픈 어린이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자식이 의사가 되겠다는 데 반대하는 부모는 거의 없겠지만 재은양의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재은양이 소질 있는 미술이나 음악, 혹은 요리쪽으로 딸의 진로를 생각해봤다. 의학공부 과정이 너무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못지않게 공부를 잘하는 아들(브롱스 과학고)이 의사가 되고 딸은 예술가가 되어도 좋을 일이다. 하지만 “재은이에게 의사는 목표가 아니고 사명”이라는 것
을 알고 나서는 그냥 밀어주기로 했다.
그렇다면 중학교 시절 꼭 하고 싶은 일은? 실력이 있다고 소문난 헌터중학교 테니스부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야무진 재은양이 열심히 연습하면 못 이룰 일은 아닌 것 같다. <박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