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재단 서머 아트 클래스 (10) 아나 맨디에타

2009-09-1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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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의문 던지는 대지의 예술가

쿠바 태생의 작가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1948-1985)는 70년대 활발히 전개되었던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70년대 미국에서는 제2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탄력을 받으면서, 많은 여성 작가와 지성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브루클린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남성 중심주의로 서술되었는지를 지적하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39명의 여성을 선별해 저녁파티를 갖는 아이디어를 축으로 5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원시 신화의 여신부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조지아 오키프까지 39명의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테이블위에는 여성의 성기를 암시하는 모양의 접시들이 각자의 이름이 수놓인 테이블보 위에 놓였다. 이는 여성, 혹은 여성의 몸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도예나 자수같은 공예를 여성적이면서 저급한 것으로 여기던 예술적 고정관념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이기도 했다. 13세 때 동생과 미국으로 망명한 멘디에타는 70년대 미국 페미니즘 운동에 있어 섬같은 존재였다. ‘여성’이라는 이름아래 결속을 주장하던 7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그 이름안에 복
잡다단하게 층위져 있던 사회 계급, 인종, 국적 등의 차이점을 보지 못했다. 멘디에타는 동물의 피나 흙, 불과 같은 주술적 상징을 가진 물질들을 가지고 행위예술을 하거나 해변이나 나무에 자신의 몸의 흔적을 남기는 ‘대지-신체 조각(earth-body sculptures)’을 만들었다.

이 조각 작품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소멸되고 대부분 사진이나 비디오 기록으로 남아있다. 멘디에타의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떠나서 결국에는 고급 예술상품이 되어버렸던 회화나 조각상을 만드는 대신 개인이나 기관이 소장할 수 없는 형태의 예술과 관객이 함께 참여해야 완성될 수 있는 행위 예술을 추구하던 70년대 ‘대지 예술(Earth Art)’이나 ‘신체 예술(Body Art)’와도 조응하는 점이 많았다. 멘디에타에게 있어 해변의 모래사장이나 숲 속의 풀
밭, 나무위에 자신의 몸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흔적’의 모순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멘디에타의 작품은 그 안에 불변하는 견고한 무언가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70년대의 페미니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고 이 후 우리는 김수자 니키 리와 같이 예술뿐만 아니라 ‘여성’과 ‘정체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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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알재단 10주간 진행했던 미술사 강의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며,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연재를 마친다. 다음주부터는 이정석 소나타 다 끼에자 단장의 알기 쉬운 클래식 강의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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