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저트 와인

2009-08-29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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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선영 회계사

제 남편의 고향은 경상도 입니다. 무뚝뚝하고 잔정을 잘 내 보이지 않는 것이 경상도 남자의 특징이라며 무뚝뚝하면 할수록 남자다운 것이라 믿는 사람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결혼 15년째가 되도록 생일, 결혼기념일, 발렌타인데이 등을 제대로 지내본 적도 없고 남편으로부터 꽃 한 송이 받아 본 적도 없습니다. 주변의 지인들께서는 제 얘기를 잘 믿지 않으십니다.
3주전 제 생일 날이었습니다. 남편은 ‘생일’을 특별히 지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한자 뜻 그대로 ‘生日’ 즉 살아 있는 매일매일이 생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살아있는 날 생일을 무심히 지내고 퇴근을 하였습니다.
부엌에 들어서니 식탁 위에 와인 한 병이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남편이 밖에서 술 한 병씩을 선물로 받아오는 경우가 있기에 그런 술 인지 알았는데 저 멀리서 남편이 소리를 칩니다.
“You! 그거 You 생일 선물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생일선물? 결혼해서 생일선물 처음 받아 보는 것입니다. 왠 와인? 문득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한국일보 요리섹션에 디저트와인 소개가 난 적이 있었는데 제가 보면서 “이 디저트 와인은 무슨 맛일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의 대답은 참으로 썰렁했었습니다. “디저트 와인은 다른 와인보다 비싸” 이렇게 말입니다. 아…그러더니 다른 와인보다 비싸고 고급인 프랑스 소테른 지역에서 만든 디저트 와인이기에 결혼 15년 만에 처음 해 보는 생일선물로 좋을 거라 생각했나 봅니다.
황금빛이 감도는 이 와인이 무슨 맛일지 궁금하지만 쉽게 따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귀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자…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You! 그거 You 옷 한 벌 이야!” 하는 외침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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