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는 17-18세기에 걸쳐서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명장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명품 바이올린 이름이다. 지금까지 어느 바이올린도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는 신비로운 명기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세계 최고의 명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복잡하고 특별한 제작 과정에 있었다. 바이올린은 온도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악기이다. 만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에 실내 온도의 영향을 받으면 바로 스트링의 소리에 영향을 끼친다. 그 정도로 바이올린은 온도에 예민하다. 그래서 스트라디바리는 온도에 변화에 잘 견디는 나무를 구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 그 나무를 알프스 정상에서 찾아내었다. 오래 동안 차고 매서운 눈보라를 맞으며 자란 침엽수 가운데서 엄선한 나무는 그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었다. 따뜻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속은 여물고 벌래가 먹어서 단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온도의 변화에 잘 견디지 못한다. 무지개의 영롱한 7가지 색깔이 나오기 위해서는 통과의 고통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처럼 바이올린에 쓰는 나무도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친 것만이 가장 고귀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선택된 나무는 베니스강 하류로 운반되어 일 년 정도 더위와 추위의 곤고한 연단을 받게 한다. 그 후에 나무를 건져내어 스트라디바리의 집으로 가져다가 나무를 절단한 다음 오븐
에 넣고 낮은 온도로 구워낸다.
그런 다음 구운 나무를 모래밭 깊이 파묻어 놓고 2-3년을 또 기다린다. 이런 복잡한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거친 나무는 웬만한 온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여 자연그대로의 소리를 공명해 내는 고품격 바이올린으로 태어난다. 날카로운 모래알의 시련이 없는 조게 안에서는 영롱한 진주가 만들어지지 않듯이 우리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을 통한 영혼의 울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속빈 강정과 같이 무의미한 삶이 되
고 말 것이다. 경복궁을 복원한 명장 도편수 신응수 옹은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다. “궁궐의 대들보로 쓸 수 있는 소나무 중에 최고는 높은 산에서 자란 적송이다. 적송은 나이테가 좁고 속살은 붉다. 나이테가 넓으면 쉽게 자란 나무여서 속살이 하얗고 무르고 쉽게 갈라지고 비틀어진다. 추운
겨울의 눈보라와 험한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적송이라야 강철같이 단단하고 올곧다. 사람도 이와 같다.”
신약 성경 야보고서에 보면 시련과 고통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여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장 2-4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으면 시련과 고통 따위가 다 사라져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시련과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을 가지고 시련과 고통을 맞서 나가므로 이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얻게 되는 것이 바로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다.
그래서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시련과 고통이 다가와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불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한다. 왜냐하면 시련이 있으므로 해서 인품이 한 단계 더 올라가고 더 성숙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에도 스트라디바디우스와 같은 명품이 있듯이 신앙인도 명품 신앙인이 있다. 명품 신앙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누군가가 예수 믿는 나를 바라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라는 감동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한 선을 행하는 사람, 어디를 가든지 피스메이커가 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명품 신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