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가 있는 여름

2009-08-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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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이오면 내 마음속에 살고 있는 바다가 출렁인다. 홀로 외로울 때면 더욱 그렇다. 부산 감천 바다는 세 들어 살고 있던 양철집 코앞까지 밀려왔다. 턱마루를 내리면 돌담이 있고 그 아래로 흰 거품을 앞세운 고은 물살이 바윗돌에 부딪쳐 날아오른다.
바다는 내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부드럽게 내 발밑으로 와서 간지르며 쏜살같이 빠져 나가서 발밑 모래를 흠처가고 나는 넘어질 뻔 한다.
고소하다는 듯 다음번에는 더욱 멀리 물을 떠밀고 정강이까지 걷어 부친 바지를 이번엔 홀랑 적시고 달아난다.
좀 더 커서는 여름마다 재수가 좋으면 큰 이모는 대천 바다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낯에는 대학수영 선수들을 따라 무인도로 수영을 해서 갔다. 아름다운 바다 및을 내려다보며 동화 같은 바다 속의 비밀을 보았다. 밤에는 낯의 뜨거움을 채 식히지 못해 따뜻한 모래위에서 아무러케나 잤다. 밤에 눈을 뜨면 별들이 나의 머리위로 수도 없이 떨어져 왔다.
여름이 아닌 추운 겨울바다를 나는 안다. 눈이 수북이 덮인 소록도에서 문둥병 환자들의 손을 잠아주고 그 이름을 외우며 가마떼기 위에서 자면서 사랑을 배운다. 자신을 사랑하기보담 더 남을 사랑하기를 익히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모자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람의 발자취가 없는 모래에 발자국을 내며 외로움을 달랬던 여름 바다를 안다. 에덴의 동쪽을 쓴 스타인 백이 살았던 바다를 보는 언덕과 호화 주택과 카페가 널려있는 카멜. 그리고 가난한 농군들이 땅을 일궜던 살리너쓰를 지나며 스타인 백이 숙고했던 인생이야기를 나도 생각해 본다. 무엇을 위해, 왜,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아직도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의 출렁거림이 내 맘 속에 있다. 바다로 달려가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 형제여, 부모여, 신이여. 모두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바다위에서 해가 뜨고 지고 밀물과 썰물이 시간을 재고 꿈꾸었던 희망이 수평선을 따라 가까이 오는 듯 쉽더니 멀리멀리 간다. 그래도 소망을 건다.
푸르고 깊은 바다여.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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