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를 이륙한 비행기가 상공으로 올라갈 때 바로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올라가다가 밑으로 한번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고, 또 한참 올라가다가 다시 밑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야 더 힘 있게, 더 빨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곧고 강하고 바르게 자라나는 비결은 중간 중간에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중간의 마디마디가 잠시 끊어줌으로서 잠시 쉬어간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쉼에는 신비가 있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쉬면서 에너지를 모은다. 재정비한다. 이때 마디에 새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다음단계에서 더 강하게 올라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을 쉴 때에도 호(呼)와 흡(吸) 사이에 반드시 쉼이 있어야 숨을 힘 있게 쉴 수 있게 된다. 화살의 시위도 뒤로 빼낸 다음 잠시 멈추었다 놓아야 멀리 날아간다. 신기하게도 모든 힘은 멈춤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의 일을 다 마친 후에 하루를 멈추고 쉬도록 안식(安息)의 시간을 주셨다. 그리고 그 쉬는 날을 복주고 거룩하게 하셨다(창세기 2:3). 얼마나 놀라운 창조주의 배려인가? 6일의 노동의 시간은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어 육의 삶을 영위하는 시간이고, 하루의 안식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영적인 관계를 친밀하게 하는 시간이다. 이 두가지과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사람은 행복하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말씀을 듣고, 내 내면이 감사의 찬미를 부르고, 하늘의 보좌를 향하여 기도를 올려 드릴 때 우리의 영혼은 씻김을 받는다. 우리 속에 겹겹이 쌓여있는 세상의 독이 녹아내린다. 이것이 주일의 안식을 지키는 자의 축복이고 특권이다. 멈춤에 대한 가장 위대한 모범은 예수님이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한적에 곳을 찾아 기도와 묵상을 하였다(누가복음 5:16). 사람이 겪는 체험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홀로 있을 때에만 경험하는 것이 있다. 현대인들의 큰 약점은 홀로 있는 멈춤의 시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혼자 있을 때 TV를 보거나 전화로 이웃과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고독을 피하려고 한다. 수많은 현대인들이 홀로 있는 시간을 성화하는 방법을 모른 채 분산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홀로 멈춰 있는 시간을 성화하기 위하여 야곱과 같은 영적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얍복강에서 홀로 밤을 새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했던 야곱처럼 되어야 한다.(창세기 32:2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내가 일상의 분주한 생활을 멈추고 사람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곳에 머물러 묵상의 시
간을 가질 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고, 듣지 못하던 음성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보라. 현대인들은 자극 받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보면서 밥을 먹고 동시에 TV를 본다. 그리고 귀에는 MP3가 끼워져 있다. 그리고 누가 말을 걸면 대화도 한다. 이래 가지고는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뇌 전문가의 말해 의하면 사람이 동시에 많은 환경에 노출되면 전두엽이 손상을 입는다고 한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홀로 묵상하는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일에 몰두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환경을 피하고 홀로 있는 멈춤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헨리 소로(Henry Thoreau)는 “나는 멈춤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숲으로 간다”고 말했다.
평생 1,093개의 발명품의 특허를 받은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일찍이 청각을 상실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다. 답답하게 여긴 주변이 친구들이 “이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청각회복 수술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에디슨의 대답은 “No였다. 그 이유는 세상의 잡다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야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진짜 힘은 멈춤의 미학에서 나온다. 에디슨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