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재단(대표 이숙녀)이 진행하고 있는 서머 아트 클래스 ‘10명의 현대미술가’의 내용을 10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뉴욕시립대 대학원 예술사 박사 과정 김지혜씨가 강의하는 이 클래스는 예술가와 예술작품, 사조 등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당대의 다른 분야에서 같이 일어나고 있었던 움직임들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피에 몬드리안,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락, 로버트 라우션버그, 백남준, 앤디 워홀, 아나 맨디에타의 순서로 연재됩니다.
야수파(Fauvism)의 대표 화가로 알려져 있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초창기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양식의 그림들을 그리면서 색채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1905년 야수파 화가 앙드래 드랭을 만나며 신인상주의 양식을 벗어나 더 과감한 색채의 사용을 시작하게 되고, 20세기 아방가르드 회화의 큰 화두인 ‘추상’으로의 길목을 트게 된다. 야수파라는 이름
은 1905년 가을 살롱전에 전시된 드랭과 마티스의 그림들을 보고 한 비평가가 ‘야수(les fauves; wild beasts)와 같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생의 기쁨(Joy of Life, 1906)이나 마티스 부인의 초상(Portrait of Madame Matisse, 1906)과 같은 이 시기의 작품들이 마티스의 야수파 대표작이다. 야수파를 통해 마티스는 색채의 사용이 더 이상 재현이나 ‘묘사’의 역할이 아닌 ‘표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
서양 회화의 역사에서, 색채나 명암, 구도는 캔버스라는 2차원적 공간을 3차원적 공간으로 환원시키는데 있어 제일 중요한 수단이었고, 회화는 창문이나 거울처럼 자연 풍경이나 정물을 실제 그대로 재현해내는 장르로 존재해왔다. 이런 몇 백년에 걸쳐 이어져 오던 전통이 세잔과 고갱을 통해 무너지기 시작했고, 마티스는 색채를 재현적 지위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추상으로가는 길목을 더 탄탄히 했다. 색채는 더 이상 실제를 그대로 재현해 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있는 도구로 탈바꿈했다. 우리가 1950, 60년대 회화들에서 보는 색채만으로 이루어진 순수추상 회화들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마티스 같은 화가들이 이룬 색채의 해방 덕에 가능해진 것이다.
1906년 이후 마티스는 회화에 있어서 또 다른 수단이 ‘선’의 사용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되고, 장식적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벽지나 테이블 커버 등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무늬의 반복이나 카펫등에서 볼 수 있는 아라베스크 무늬들이 자주 그의 작품에 나타난다. 모마에 전시된 붉은 화실(The Red Studio, 1911)이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마티스의 이런 ‘선’ 혹은 드로잉에 대한 탐구는 1930년대를 지나면서 색종이를 캔버스에 오려 붙이는 새로운 양식의 회화로 거듭난다. 피카소의 콜라주 작품과도 비슷한 개념이지만, 마티스는 신문과 같은 기존의 재료를 오려 붙이는 방식이 아닌, 본인이 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의 작품을 만들었다. 이후 우리는 1950년대 잭슨 폴락 같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이 색채와 선을 얼마나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지를 볼 수 있게 되었고, 색과 선 그 자체가 더 이상 수단이 아닌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된 데는 마티스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