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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칼럼 “히스기야의 위기관리”

2009-05-30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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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큰 위기가 왔다. 현재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대치하게 된 것이다. 북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은 정권유지를 위해 남유다의 솔로몬 성전에 대항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섬기다가 신앙과 민족정체성을 다 잃어버렸고, 그 결과로 국력이 약화되어갔다.

남유다는 어떠했나? 그 당시 남유다의 왕권은 베냐민 지파의 도움을 받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이어받았다. 히스기야는 유다지파의 정통성을 이어받아 남유다의 13대 왕이 된 사람이다. 그는 2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여러 번 위기를 만났지만 선지자 이사야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렸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처럼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이 이 위기를 잘 돌파하지 못하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유비무환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히스기야가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해결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시기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아는 대로 최근 우리나라의 위기는 내부적, 외부적 위기가 함께 몰려왔다는데 그 긴박성이 있다.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특별 조사를 받고 있던 전직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말
미암아 나라 내부의 민심이 흉흉하고 소란스럽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 북한에서는 핵실험을 통한 전쟁도발 공언, 개성공단의 일방적 폐쇄를 협박하면서 남한을 압박하고 있어서 정세가 극히 불안하다.


그러면 히스기야는 그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돌파하였나? 먼저 그는 그의 아버지 아하스의 실패를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았다. 아하스는 16년 동안을 나라를 다스리면서 이방인의 풍습을 본받아 우상을 섬겼고 백성을 오도하는 악정을 폈다. 특히 그는 아람-에브라임 동맹군이 반 앗수르 연합에 유다를 끌어들이려는 외교 전략에 말려들어 이사야 선지자의 간곡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친 앗수르 외교 정책을 썼다가 나라를 도탄에 빠트렸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자신의 생활을 깨끗하게 하고 정치를 투명하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과 산당을 다 없애버리고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주어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평안하게 했다.

그가 왕이 된 지 14년이 되었을 때 앗수르의 장군 랍사게가 18만 5,000명의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예루살렘을 포위한 후 무조건 항복하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 때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강대국에 가서 손을 내미는 외교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이사야 선지자의 방법을 썼다. 이사야 선지자의 방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는 기도할 때 혼자만 하지 않았다. 주의 종 이사야와 온 국민에게 합심 기도를 요청했다. 그리고 자신은 솔선수범하여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겸손과 용기를 바라보고 안심했다. 이것이 히스기야에게 있어서 위기해결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처칠에게도 있었다. 1940면 9월 15일은 독일 히틀러의 나치 공군 전투기들이 총공세를 펴 런던을 대공습하는 날이었다. 그 때 처칠은 공군 작전실에 들려 공군 사령관에게 물었다. “우리 공군에게 뜰 수 있는 비행기가 몇 대가 있소?” 공군 사령관의 대답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였다. 그 대답을 듣고 처칠은 “그럼 내가 졌단 말인가?”라고 머리를 떨구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처칠은 중보기도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리스 하월스가 생각났다. 그는 즉시 그에게 연락하여 전 영국교회에게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중보기도의 네트웍(network)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온 교회마다 기도하는 성도들로 가득 찼다.

몇 시간이 흘러 상황실에서 보고가 왔다. “놀랍고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구름 떼처럼 몰려오던 나치 공군기들이 갑자기 기수를 돌려 퇴각하고 있습니다! 퇴각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처칠과 로드 도우딩 공군대장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중보기도 후에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회고하였다. 히스기야와 처칠의 위기관리 노하우를 오늘날 한국의 위정자들이 귀담아 듣기를 바란다.

김창만 목사 <온누리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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