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UBC 아시학과 주최

2009-05-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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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작가와의 밤’행사 열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아시아학과는 28일 오후 6시 UBC아세안센터에서 ‘김영하 작가와의 밤’을 통해 한국문학 이해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김 작가와의 질의 응답으로 진행됐다.
김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기에 앞서 ‘나는 몇 살일지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로 첫 말문을 열었다. 베트남 전 직후,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비무장지대근처에 살던 작가는 열 살 때,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이 전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몇 살 일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첫 번째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는 그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강한 집념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마치 열 살 이전의 기억이 없는 작가와 같은 기억에서 사라진 사람들, 혹은 어디론가 가서 우리에게서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작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자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 ‘자살 안내인’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잊혀지는 것 보다는 자신의 삶이 글로 남겨지는 것을 원했고, 후에 그가 만난 모든이들은 사라지고, 오직 기록하는 작가만이 남게 된다. 김 작가는 이는 실제 자신이 작가가 된 하나의 이유라고 밝혔다.
작가의 또 다른 소설 ‘빛의 제국’ 또한 가히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는 비무장 지대근처의 실로 위험한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집 주변을 둘러 싼 것은 오로지 지뢰였으며, 하루하루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겉으론 그럴 듯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에 위치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만이 존재했던 후엔 그것마저 망각한 채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속의 ‘대성리’를 보면서 작가는 ‘인생의 연극성’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서로를 향한 희극적, 원시적 적의, 서로 너무나도 닮은 그러나,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침묵의 전선 속에서 타오르는 식욕을 억제 한 채, 서로에 대한 집단적 신경증을 앓고 있는 남, 북의 대치 상황을 보면서, 그는 인생에 ‘남과 북이 동시에 존재’하는, “혼자만 어둠 속인 혹은, 혼자만 대낮인, 그런 세상”을 살아온 탈북자 김기영이라는 인물을 책 속에 그리게 된다.
사후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단지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 속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또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죽고 싶어 안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들끓는 이 사회가 과연 올바르게 향하고 있는 가. 또한, 이러한 죽음의 풍경들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는 아직도 삶이라는 것에 미련이 남았는가”라고.
/이혜진 인턴기자 vancouver@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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