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의 향기

2009-03-25 (수) 12:00:00
크게 작게

▶ 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과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立春)도 지났다. 아직은 꽃샘바람이 매섭지만 본격적인 봄의 기운을 뿜어내는 대자연의 법칙을 누가 막는가.
양지바른 곳에 수줍게 고개 내민 수선화와 크로커스가 봄임을 알려준다. 어김없이 순환되는 대자연의 순리는 봄비처럼 메마른 우리가슴을 촉촉이 적셔주는 듯하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싸아한 봄바람이 가슴을 청량하게 해준다. 죽음을 뚫고 소생한 빛의 승천, 자연을 관찰하면 굳게 닫혔던 인간의 마음도 열리고 샘물 같은 사랑이 넘치는 것 같다.
봄은 대지 위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의 음표를 달아주고 노래하게 해준다.
춘하추동 계절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변화가 주는 자연의 교훈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
자연과 인간은 모두 하늘이 창조한 피조물이다.
생명의 봄이 인간의 고뇌를 감싸고 일깨워주며 자연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있다.
옛 어른들은 만물 속에 자연의 이치가 들어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은 늘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 생각할 마음의 여유를 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필연(必然)의 존재성을 실감하게 한다.
어쩌면 인생과 자연도 내 연인 같은 포근한 외로움으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동반자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인간은 역경과 고통 속에서도 인생을 사랑하고 겸허히 사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자연 속 나무가 새 생명으로 겨울을 이기듯이 인간도 자연을 통해 성숙된 모습으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의 징검다리가 있다. 자연의 나무, 이름 없는 풀꽃과 아름다운 새들은 삶의 비밀을 가르쳐주는데도 단지 사람만이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비교적 바쁘게 살아가지만 자주 하늘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을 막연히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구름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덧없음을 안겨주지만 그래도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자주 대화를 즐긴다. 이제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계절이 변할 때마다 나 자신을 차분히 응시할 시간이 많아짐을 느낀다.
지난주에 수필가협회가 주최한 신인문학상 행사가 성황리에 잘 끝났다. 척박한 이민의 삶에서 글쓰기는 정신건강에 좋다. 입선되신 분 중 칠순이 지나신 분이 두 분이나 계셨다. 인생경험이 풍부한 그들은 삶의 다양한 고비를 넘기며 사람과 인생의 대한 경험을 글로 승화시켜 표현했다. 그분들을 보며 배움에는 끝이 없고 나이가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산야(山野)에 다소곳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이름 없는 야생화 하나, 풀 한 포기 에서도 생명의 빛과 환희가 느껴진다. 소박하게 일생을 꽃피우는 풀꽃과 한마음이 되고 싶은 것은 나이 들며 철이 들어서일까. 생동하는 봄의 기운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