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낟알의 비밀’ (The Secret of the Grain)
2009-01-30 (금)
★★★★★(5개 만점)
이민자의 꿈과 좌절…
가슴 뭉클 ‘인생 드라마’
프랑스 남부의 작은 항구도시 세트의 서민동네에 사는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일상과 꿈과 좌절 그리고 불굴의 생존력을 사실적이요 따뜻하며 또 인간적으로 그린 감동적인 프랑스 영화다.
200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비평가상을 받은 이 작지만 큰 드라마는 모든 이민자들이 공유한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풍성하고 생동감 있고 또 자세하면서 분명하게 묘사했다.
특히 이민 1세대와 새 나라에서 출생한 2세대 간의 세대 및 문화 갈등을 때로 우습고 또 때로는 비감하게 묘사했는데 많은 인물들의 인물 및 성격 묘사를 촘촘히 스케치하면서 그것들을 집합해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린 심금을 울리는 가족 드라마다. 이와 함께 새 나라에서의 삶이 여전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이민 1세대 남자들의 소외감과 무기력감을 민감하면서도 절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튜니지아계 프랑스인 아브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자신의 가족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61세의 슬리만(하비브 부파레스)은 35년간 일해 온 조선소에서 해고를 당한다. 하비브는 대가족의 가장인데 이혼한 전처 수아드(부라우이아 마르주크)와의 사이에 장성한 4남매를 두고 있다. 늘 가족 양육비를 제 때 못내 수아드의 핀잔을 받는 하비브는 자기 연인인 라티파(하티카 카라우이) 소유의 호텔서 산다. 흥미 있는 사실은 하비브를 비롯한 이민 1세대 남자들은 현지 적응이 잘 안 돼 남의 동네서 사는 것 같은 모습인 반면 수아드와 라티파 그리고 그들의 딸 등 여자들은 모두 생활력 강하고 능동적이며 밝고 활기차게 묘사된 점.
하비브와 그의 두 여인을 중심으로 하비브의 아들, 딸, 손자 및 며느리 등의 모습과 인물 묘사가 왁자지껄하게 다채롭다. 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수아드의 집에 모여 수아드가 요리한 생선 쿠스쿠스(북아프리카 아랍계의 낟알요리)를 먹으면서 떠들고 웃고 다투며 가족 모임을 갖는데 이 장면이 풍요롭기 짝이 없다. 잘 요리된 쿠스쿠스가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의 모임과 대화를 통해 하비브 가족의 역사가 얘기된다.
특히 아름다운 것은 하비브와 라티파의 10대 딸로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지닌 솔직하고 총명하고 아름다운 림(하프시아 헤르지) 간의 관계. 하비브는 림을 친 딸처럼 그리고 림은 하비브를 친아버지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
직장을 잃은 하비브는 평생 꿈이었던 항구에 정박한 폐선을 수리해 쿠스쿠스 식당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하비브의 가족들은 처음에 돈 한 푼 없는 그의 식당 개업에 회의를 표명한다. 그러나 하비브의 불굴의 신념과 고집이 마침내 모두에게 전염돼 가족이 일치단결해 식당개업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갖가지 난관을 겪은 뒤 마침내 식당을 연다.
마지막 장면은 손님들을 잔뜩 초청한 가운데 수아드가 마련한 쿠스쿠스로 개업파티를 여는 것으로 장식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모든 주제와 인물들이 총체적으로 집결되는데 심장이 뛰고 눈물이 나도록 감격스런 장면은 손님들 앞에서 여흥용으로 림이 추는 춤. 림이 악사들이 연주하는 전통음악에 맞춰 풍만한 육체를 요동치듯 흔들면서 오랫동안 추는 춤은 생존의 몸부림이요 삶의 희열인데 림의 드러난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로 처절한 흥분감에 젖게 된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가라앉은 부파레스와 생동감 넘치는 헤르지의 대조적인 그 것이 매우 훌륭하다. 성인용(그러나 10대들이 봐도 좋다.) IFC. 뮤직홀(310-274-6869).
하비브와 림(왼쪽)은 친 아버지와 친 딸처럼 서로를 사랑한다.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hjpark@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