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메시아 싱얼롱

2009-01-1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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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크리스마스 이브 전 날이다. 큰딸 네와 작은딸 네가 금년엔 예외로 엄마집으로 왔다. 해마다 성탄절과 새해를 큰딸 네에서 온가족이 모여 보내곤 했는데, 얼마 전 외출했다가 한밤중에 그만 둔덕에 걸려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바람에 어이없는 부상을 당했다. 다른 곳은 견딜만한데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심하게 부딪혀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조용했던 집안은 갑자기 왁자지껄 8명의 손자손녀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성탄 트리 옆에 쌓아둔 선물에 눈독들인 아이들, 몫대로 선물을 나눠주자 급히 포장지를 찢고 내용물을 꺼내보며 법석이다. 둘이 살기에 알맞은 집안에 발 디딜 틈 없이 장난감을 굴리며, 드레스를 입어보고 카메라 선물 받은 손녀들은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정담 속에 한나절을 보내고 모두들 제집으로 돌아가니 텅 빈 집안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마침 저녁 8시에 케네디 센터에서 메시아 싱얼롱이 있는 날이다. 무릎 때문에 층층대를 오르기가 힘든 상태인데 어쩌나. 벌써부터 벼르던 메시아
싱얼롱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까워 서둘러 달려갔다. 6시부터 티켓을 준다는데 들어가는 길목에 바리케이트가 쳐져있어 그만 길을 잃고 이리저리 길을 찾아 파킹장에 차를 세우니 시간이 30분이나 늦었다. 남편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부축해준다는 약속을 까맣게 잊고 혼자서 저만치 성급한 걸음으로 층계를 서둘러 오르고 있다. 나는 천천히 남편이 오른 층계를 조심해서 올라가 실내로 들어가니 구름떼같이 몰려온 음악 애호가들, 구불구불 겹겹이 줄서있는 틈 속에서 남편이 웃고 있다. 표를 얻고 안내원 따라 간 우리 좌석은 2층 로열박스 45번의 1, 2 다. 무대가 가깝고 청중들의 모습을 한눈으로 불 수 있는 행운의 자리다.
잠시 후 300여명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자리하고 4명의 솔로이스트가 등장, 지휘자의 익살스런 멘트로 시작해 지휘봉에 맞춰 서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제 1부 예언과 탄생, 밝은 목소리 테너의 ‘모든 골짜기 높아지리라’에 이어 합창순서가 왔다. 빈자리 없이 콘서트홀을 꽉 메운 청중들이 헨델의 메시아 악보를 펴들고 합창단과 함께 오케스트라에 호흡 맞춰 부르는 ‘주의 영광’. 난 소프라노, 남편은 베이스, 우연히도 옆자리 젊은 백인부부는 테너, 앨토라니 화음이 잘 맞아 사중창이 여기에 있다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고, 2부 수난과 속죄에 이어 3부 부활과 영생으로 이어가며 ‘할렐루야’ 찬양이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합창 ‘죽임 당하신 어린양, 아멘’에 이어 또다시 ‘할렐루야’로 끝마침 하는 헨델의 메시아 싱얼롱에 함께한 2008년 성탄절은 정말로 뜻 깊은 행복에 젖은 시간이었다. 불편했던 무릎도 얼얼하도록 친 박수 덕을 톡톡히 보았나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내년에는 딸네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밤늦은 시간 집을 향해 파킹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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