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을 즈음하여 대중적인 007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누구나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전의 007 영화의 제목과는 다르게 색다른 제목이라 눈길을 끈다. ‘QUANTUM OF SOLACE’, 한국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는 제목이라 그냥 영어제목 그대로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구태여 제목을 달자면 ‘한 조각 위로’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테러 조직을 찾아 증오의 복수심으로 살인한 후에야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눈 내리는 밤거리를 혼자 쓸쓸히 걸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것은 어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위로를 찾아 떠나는 것임을 알게 된다.
흔히들 남자는 살면서 세 번을 운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운다고 한다. 이런 것 말고도 남자는 때때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할 때, 군대 갈 때, 하던 일이 힘들어 질 때 울게 된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세 번 눈물을 흘리셨다.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면서 우셨고, 죽은 나사로 앞에서 우셨고,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히5:7)에서 우셨다. 이렇게 사람이 울 때마다 진정한 위로(Solace)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현대사를 보면 세계 제2차대전시 독일의 나치정권 하에 살해당한 유대인의 수가 육백만 명이 넘는다.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늘 전쟁과 핍박의 연속이었다. 성경을 보면 이집트,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같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역사의 고통 속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신약 성경은 이런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했다. 이렇게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은 참아내기 힘들게 살아야 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해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편지를 하였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1:7)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다 똑같겠지만 타향살이의 아픔과 설움은 같은 것일지라도 그 느낌은 아리고 서러운 것이다. 십 수 년 사업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는 허망함, 함께 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는 그리움, 부모님의 상을 당해도 한국에 갈 수 없는 형편, 살아남기 위해서 한 민족끼리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좁은 바닥,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 수 있으리라 했지만 등을 돌리고 서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들이 무기력하게 풀 수 없는 삶의 숙제로만 남게 된다.
미국은 아직도 한국 국민들에게는 자녀 교육의 요람이다. 그래서 조기유학 아니면 다른 면으로 자기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도움닫기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땅에 몸을 묻어야 할 사람들은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돈데 보이’(Donde Voy -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의 노래는 남다른 애환이 담겨 있다. 이 돈데 보이는 미국 국경 앞에 쓰여 있는 경고문, “여러분! 국경을 넘는 일은 죽음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라고 쓰여 있음에도 살길을 찾아 국경을 넘어야 하는 멕시코인들의 애환과 슬픔을 노래하였다. “동트는 새벽녘 나는 달리고 있어요.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어느 하늘 아래를 말이죠. 태양이여, 부디 나를 들키게 하지 말아다오. 이민국에 신고 되지 않도록 말이에요.”
구약 성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렇게 유대인들의 삶의 어려움을 예언하며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이사야40:1-2)
오늘만큼이라도 냉수마찰하듯 시원한 위로를 받고 싶다. 아니 우리는 서로 위로를 해야 한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자(Korean DIASPORA)로서 다시 힘을 얻기 위해 서로 위로하며 살아야 한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 말은 우리에게 진정한 ‘Quantum of Solace’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