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약장수’ 들의 뻥튀기

2008-10-2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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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복 랜스다운, VA

필자는 지금도 6, 70년 전 시골 장터의 약장수를 기억한다. 등에 큰 북을 짊어지고, 양 다리에 맨 끈을 농간하여 북을 치면서 익살을 늘어놓으면 시골에서 온 장꾼들이 그것을 보려고 모여든다. 모여든 사람들이 공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넋을 잃기 시작하면 약장수는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xxx 의학박사님이 만든 약인데 이 약만 먹으면 아주머니, 아저씨들 기운이 없어 빌빌하는 모든 병이 다 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몸살 한번 앓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고 넉살을 피우며 사기꾼의 본색을 드러낸다. 장꾼들은 혼을 잃고 집에서 가지고 온 쌀, 산나물, 닭, 계란 등을 팔아 만든 돈을 아까운 줄 모르고 다 날리고 나서는 집에 돌아와 속았다고 분통을 터트리기 일쑤였다.
근 1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이 모습은 변한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장터에서부터 신문, 잡지, 라디오, TV, 비디오로 옮겨진 것뿐이다. 장마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각종 선전매체들은 명의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무엇이나 만병통치, 장수, 정력제가 된다고 함께 북을 치며 뻥튀기 선전을 해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세상에는 의사도 필요 없고, 늙어가거나, 아파서 고생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공통된 바람을 노리는, 도덕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상술에 마음이 쏠리거나, 저들의 교묘한 선전에 자극을 받은 효자, 효녀, 효부의 효심이 “이런데 쓰는 것이 돈”이라며 무리를 하면서도 아까운 줄 모르고 내놓는 것이 현 사회의 기풍이기도 하다. 가끔 밑천 생각을 하기도 하며, 비밀스럽게(?) 먹고 나서 혹시 아는 사람이 물으면 “좋은 것 같다”고 대답하는 것이 전부다.
우연히 눈에 띄는 신문이나 주간잡지의 광고나 건강에 관한 기사를 보거나 방송을 들으면 뻥튀기 소리가 너무나 요란한 것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부터 한 한의사의 모 주간신문 광고에는 심장(心臟)과 대장(大腸)의 ‘장’을 구별 못해 모두 ‘臟’으로 쓰더니, 요새는 ‘삼차 신경마비’를 고친다고 한다. ‘삼차 신경통’이란 병명은 있어도 ‘삼차 신경마비’라는 병명은 없고 ‘안면 신경마비’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신경이 마비되면 ‘쑤신다’고 하니 ‘마비’의 뜻도 이해가 안 되는 상태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한의사들의 건강 칼럼에는 ‘뇌졸증(證 ?)’이란 병명 아닌 병명이 자주 나온다. 문맥으로 보아 글자의 오식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뇌졸중(腦卒中)을 잘못 안 무지의 산물로 보인다. 비디오 광고의 선전 자막에서 배웠나 싶기도 하고.
한 한의사의 건강 칼럼 중에는 길가는 개가 아니라 잠자던 목장의 소가 웃을 구절들도 있다. ‘다뇨증 치료’를 논하면서 “여자의 경우 전립선 수술 후…” 운운 하는데 언제부터 여자의 몸에 전립선이 생겨났는지 알고 싶어진다.
한 주간신문에 ‘한방전문의’가 쓴 ‘신경통의 한방요법’이란 칼럼에는 좌골신경통의 치료법으로 xx탕, oo탕을 쓰면 낫는다고 했다. 제4, 5번 요추와 1, 2, 3번 선추를 출발점으로 골반 내에서 둔부로 나와 대퇴 후면을 거쳐 발바닥까지 이르는 좌골신경이 어떤 원인으로 압력을 받아 생긴 통증을 ‘좌골신경통’이라고 부르나, 이는 병명이 아닌 하나의 증상을 말한다.
이 증상의 원인 -요추간판 탈출증, (변형성)척수염, 골반(결합조직)염 등 근성원인과, 이상근(PIRIFORMIS M.) 증후군, 외상 및 풍습 등 우성원인- 을 이해하면 한방 약물 치료의 한계를 알게 된다. 통증의 주원인이 되는 요추간판 탈출증이나 이상근 증후군의 치료는 밖으로부터 힘을 가하는 이근수법을 응용한다. 모든 약물요법은 (풍습을 제외한) 부분적, 한시적 진통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근본치료는 안 된다. 원인을 모르고 이 병을 치료한다는 사람을 경계할 일이다.
신출귀몰하는 후안무치 한의사의 뻥튀기 대형광고로 그 광고가 게재된 언론사의 수준과 현주소를 가늠해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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