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고맙다”

2008-04-29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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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쯤이다. 전화벨 소리가 꿈속에서 가냘프게 들린다. 여보세요, 잠이 깨지 않은 목소리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엄마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가슴이 콩닥 콩닥 뛴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또 무슨 일일까? 온몸이 긴장 된다. 마음이 불안하다. 혹시 쓰러져서 응급실? 머리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장막을 친다.
엄마의 목소리는 모기만 했다. 하소연을 한다. 엄마, 엄마가, 하면서 말을 잊지를 못한다. 많이 아프다는 표현을 하기 위한 전화 통화였다. 엄마, 알았어요. 금방 갈게요. 직장에는 휴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를 모시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한의원에도 갔다. 약속이 되어있지 않은 병원문도 두드렸다. 결국은 마지막으로 에머전시 병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병원에는 환자가 우글거렸다. 계절이 바뀌는 관계인 것 같았다. 감기환자가 많았다. 교통사고로 피 흘리며 실려 온 환자도 있었다. 엄마는 아픈 통증을 찾기 위해 검사하는 종류가 많았다. 검사를 받는 동안 불편한 의자에서 기약 없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은 흘러 자정이 넘었다. 꾸벅 꾸벅 앞사람들에게 절을 많이 하기도 했다. 엄마의 급한 통증은 막았다. 의사의 지시는 더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병실을 옮겼다. 엄마를 돌봐주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다음날 새벽 3시쯤이었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날짜는 약 일주일이라고 한다. 장남인 남동생과 서로 교대해가면서 엄마의 곁을 지켰다. 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원에서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 덕분에 남동생과는 정이 들었다. 병원 문을 자주 들락날락 하다 보니 하늘나라에 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아버지도 병원을 거쳐 양로원에서 약 1년8개월 동안 계셨다. 아버지의 양로원 생활은 매우 힘들었다. 맏딸로서 정성을 다해 돌봐드렸다. 아버지는 말씀하시기 힘든 상태에서도 늘 손을 잡고 힘들지, 수고가 많다, 고맙다 하면서 말씀하셨다. 엄마는 일주일동안 검사가 끝나고 회복되었다. 엄마는 활짝 미소를 띠며 남동생과 나에게 수고들 많이 했다, 고맙다 하셨다.
문득 당숙 아저씨가 효자상을 탄 것이 떠오른다. 아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슬퍼하다 못해 산소 곁에 오두막을 짓고 삼년동안 생식을 하며 시묘살이를 했다. 몸에 걸친 겉옷은 누런 색깔의 삼베로 만들어진 엉성한 두루마기 모양이었다. 짚으로 만든 굵게 보이는 두툼한 허리띠를 맸다. 길게 자란 머리를 꼬아 상투를 틀어 올리셨다. 그 위에 삼베 모자를 쓰시고 신발은 짚신을 신으셨다. 삼년이 지난 후 이 일이 알려져 효자로 소문이 나고 충북 도지사로부터 효자상도 받았다. 부모님을 위해 힘들 때는 효자상을 탄 아저씨를 생각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

조형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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