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인광장 - 바늘 침 금연

2008-04-22 (화)
크게 작게
캐나다 이민이 흔치 않던 시절에 나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왔다. 소문대로 그 도시는 아름다웠다. 해외 나들이가 처음인 나로서는 꿈의 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설레는 기대감으로 이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두 해가 지나도록 나는 안주할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치과 의사 면허증은 종이쪽지에 불과 했고 이민 지참 한도액인 이 천불은 오자말자 사라져버렸다. 아내가 나서서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얼렁뚱땅 지나는 동안 나는 첫 아들을 얻었다. 새 생명의 탄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책임감을 갖게 해주었다.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거주하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유일한 치과 대학에 편입을 위해서였다. 책을 보다가 답답할 때면 나는 담배를 피웠다.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담배를 끊었으면 했다. 담배 연기는 아이에게 좋지 않고 내 공부에도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십 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끊으라니 나는 그럴 자신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아내는 나의 무반응에 지쳤는지 담배 값이 얼만데 그걸 자꾸 태워 없애느냐고 했다. 그 한마디는 바늘 침이 되어 나의 아픈 곳을 찔렀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집안 일이 바빠 동동 걸음을 치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니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홧김에 나는 담배를 끊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조용한 시간을 택해 나는 부엌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새로 산 담배의 비닐봉지를 뜯고 첫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시는 피우지 못할 담배라고 여기니 마음이 착잡했다. 십 년을 사겨온 연인에게 작별을 고하는 심정이랄까. 담배 한 개비가 다 타고나면 나는 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렇게 쉬지 않고 나는 줄담배를 피워대기 시작 했다. 결국에는 담배 연기가 역겨웠고 담배를 쳐다보는 것조차도 괴로웠다. 그래도 나는 억지로 담배 연기를 들여 마셨다. 과도한 니코틴의 독성이 일으킬 수 있는 육체적 고통을 일부러 체험해 보려는 것이다. 피운 담배들이 꽁초가 되어 재떨이에 쌓여갔다. 금연의 결심이 단호한 탓이었던지 재떨이가 담배꽁초의 공동묘지로 보였다. 이제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웠다. 괴로움의 정도는 내가 나락 속으로 추락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 흡연을 계속 하면 무슨 일이라도 낼 것 같았다. 담배 장례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훗날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을 사정없이 짓눌러 줄 것으로 확신했다. 조금 지나니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니 세상이 빙그르 돌았다. 벽을 의지하면서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맞닥뜨린 내 얼굴을 보는 순간 늙은 호박의 속살이 연상되었다. 낯선 얼굴을 한참 드려다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이민 올 때의 장밋빛 꿈이 호박 색 현실로 나타난 것 같아 마음이 저려왔다. 다행이 구토는 일어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니 몸도 마음도 정상으로 회복 되었다.


혹독한 경험 덕분에 한동안 담배 생각은 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열흘 지나니 다시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그럴 때는 고통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과연 담배 피우고 싶은 충동이 제물에 가라앉았다. 이대로 간다면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담배 생각은 더해 가는 데 고통의 기억은 흐려져 갔다. 그러니 각오를 더 단단히 해야 할 판이었다. 담배 피우고 싶은 충동은 마음을 다잡아먹고 있으면 멀찌감치 물러갔다가 마음을 누그러뜨리면 다시 달라붙었다. 그것은 마치 약삭빠른 여우가 먹이를 노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일편단심으로 참고 지냈다. 그런 나를 비웃기나 하듯이 니코틴은 잠재의식에서 나를 유혹했다. 방안에서 텔레비전 영화를 보다가 담배 피우는 장면이 나오면 온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손가락 사이에 끼여 있는 담배가 주인공이 되었다. 집 바깥으로 나서면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담배 광고가 눈에 잘 띄었다. 그것을 쳐다보고 있으면 나는 잠시 현실을 잊어버리고 광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쩌다가 친구들과 환담이라도 나누는 자리에 내가 참석하면 짓궂은 친구는 나에게 담배를 권했다. 내가 담배를 끊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재미로 그래 보는 것이었다. 거절은 했지만 나는 탁자 위에 놓여있는 담배 봉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담배 피우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가며 반년이 지나갈 무렵, 나는 기어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한 밤중에 나는 어인 일로 바닷가에 나와 있었다. 그곳은 불빛도 보이지 않고 인기척도 없는 외딴 곳이었다. 둘러보니 사방은 검은 베일을 쳐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폐 속 깊숙이 들여 마신 담배 연기가 느리게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환상적인 담배 맛이었다. 바닷바람에 쫓기는 담배 연기가 보기 좋았고 담배 끝에 작열 하는 불꽃이 아름다웠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담배 값이 얼만데 그걸 자꾸 태워 없애” 아내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어쩌면 그 소리는 나의 속내를 내보인 잠꼬대였는지도 모르지. 이십 오년이 지난 후, 지금 생각 해봐도 바늘 침 같은 그 한마디가 고마울 뿐이다. 왜냐하면 애연가에게 물어보라. 금연은 아무나 하나.


강치범
USC 치과대학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