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미국 속의 한인 노인

2008-04-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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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 조선조 세종 시대 민족의 혼을 외치며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던 유랑정객 김시습이 유년시절에 지은 시 한 구절입니다. 그는 생육신으로 추앙받은 당대의 현인이요, 의로운 재속 정객이었다고 후일 사가들이 평하였다고 합니다.
금번 한국의 4.9 총선에서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으니, 철저히 소외받는 노인의 경원시 사상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보 시절에는 절대 경로의 모범생처럼 허리가 휘도록 머리를 조아려 읍소도 했건만 그것은 급할 때 쓰이는 화장실의 철학으로 변한다는 것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내미는 두 손을 감싸며 좋은 일 많이 하라고 위로하고 독려하는 우국의 정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노인의 본심일 것입니다.
지금 지구상은 한결같이 고령화에 수반된 선진문명에 따르려 하는데 자신들의 이로운 척도를 연령에 정하는 노인 경시사상, 왠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철학인 듯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노인우대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잡목 속에도 창천에 부끄러움이 없는 교목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옳다는 말입니다. 외지에 나와 살면서 조국의 내정에 참견하려는 뜻은 아니지만 한인 노인 세대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피부에 닿는 일이기에 기술하여 봅니다.
전날 모국의 대통령이 워싱턴에 올 때 이곳 한인 노인들은 더위나 추위에 아랑곳없이 공항 터미널 광장에 나와 동심 같은 얼굴들로 하늘에 모습을 드러내는 조국의 대통령 전용기를 보면서 손에 쥔 태극기가 찢어지도록 흔드는 모습 등을 머리에 그려보았습니다. 화려한 만찬장에는 초대받지도 못하는 이 노인들의 모습, 늙으면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을 슬프게 합니다.
지난 10월 서울에 가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와의 자매결연 행사장에 모인 수천 명의 노인 얼굴에서 거시적 건강사상을 읽고 감격했는데 한국 정치인들의 노인관에 의심스러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다시 말하여 필요 이상 노인을 경원시하는 것은 현대사회에 역행하는 사고가 아닌가 싶어 경각심을 울리려는 것입니다. 막연히 동정적인 노인복지정책을 운운하는 것보다는 노인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국이 가난했을 때 고국 떠나 이국땅에서 각고의 고난을 극복하여 미국 속에서 오늘의 한국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재미동포사회의 한인 노인들, 어느 대통령의 미국화하라는 경고도 있지만, 고국 하늘을 바라보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임을 조국은 인정하여야 옳지 않겠나 싶습니다.

김 미셸 /메릴랜드 한인노인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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