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2008-03-20 (목)
그 사람 겸손한 사람이야! 그리고 얼마나 온유한데 이렇게 우리가 말 할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이 조용하고 화를 내지 않으며 별로 사람 앞에 나서지도 않고 자기와 관련이 없는 일에는 간섭도 하려 들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진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민 일 세대에 속하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유교적인 사상이 아직도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는지를 금방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표면상으로 나타나 보일 뿐 그 속마음은 마지못하여, 아니 그렇게 하여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 겸손하고 온유한 척 한다면 그렇게 훈련 되어진 그 사람의 삶도 행복한 삶은 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구약 시대에는 모세요 신약 시대에서는 인간 예수를 예로 들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이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이렇게 자신을 표현한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을 통솔하였던 모세는 나약한 성격의 소유자로 인식이 될 수 없다. 불의 한 것을 보고는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엿볼 수 있으며 물이 없어서 목말라 불평하던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는 지팡이로 반석을 처 물을 솟아 흐르게 하였던 성정을 기억 할 수 있다. 자기 민족이 당하는 고통에 간섭하려 들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람 앞에 나서지 않으려 하였다면 그는 위대한 영도자가 되지 못 하였을 것이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비둘기나 양과 염소를 사고팔기 위하여 돈을 바꾸던 사람들의 탁자를 뒤엎은 상황을 연상한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온유하고 겸손한 인상이라기보다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제사제도를 보고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을 나타내 보인 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잘못된 것이나 잘못되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간섭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를 교정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적당이 화를 낼 수 있는 용기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하고 희생을 각오하여야 하는 부담이 예견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온유함과 겸손함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이제까지 알고 있는 온유와 겸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낙원을 잃어버린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수있는 낙원을 염원하고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먹고 마시는 것 물질적인 소유에 우리의 마음이 집중 되어 있지만 이것도 행복의 한 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행복 자체는 아닐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는 것은 행복의 한 조건은 될 수 있어도 행복 자체는 아니다’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부동산업에 종사하여 오면서 필자가 보람을 느끼게 될 때는 고객이 부를 쌓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이다. 고객이야 어찌 생각하시던 스스로 고객이 부를 쌓는데 기여하였다는 생각에서 흐뭇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물질의 풍유함으로도 우리의 행복을 만족 시킬 수 없는 것이라면 본질적인 행복을 찾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는 낙원을 잃어 버렸던 우리가 낙원을 다시 회복하는 길이라고 본다. 이를 위하여 온유하고 겸손한 인간 예수는 고난을 자처하였으며 이 고난을 통과하여 우리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이렇게 우리가 복을 받는 비결을 말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땅도 온유하여야 받는 것이니 진정한 온유함을 유지 하는 길은 행복의 비결도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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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김
<뉴스타 부동산 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