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술가 가족 시리즈 (3) 이일.이수임씨 부부

2008-03-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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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 이수임씨가 부부가 된 얘기를 들어보면 예술가 커플의 인연맺기 치고는 참 로맨틱하지 않다. 홍익대 미대 동기였다가 뉴욕에서 10년만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는, 웬만한 작가라면 소설 한권이나 2시간짜리 장편 영화 줄거리가 막 떠오를 낭만적인 배경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학교 다닐 때요? 전혀 관심 없었고 얘기도 변변히 한번 안했어요. 다시 만났을 때도 운명적인 인연이라는 감정은 아니고... 그냥 서로 사람이 없어서요. 흔치 않은 인연으로 만나 오랜 고생을 함께 하며 살아온 사람들답게 분명 평범한 부부들보다 더욱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갖고 있겠지만 자신들의 얘기를 멋지게 꾸미기 싫어하는 것이 이들 부부의 화법이다. 말하는 투만이 아니다. 장식품이 전혀 없는 깔끔한 이들의 작업실에서 수수한 인상과 옷차림에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작품에서 이일씨의 예술관인 ‘MSG 없는’ 담백함이 묻어난다. 이씨는 치장이 없다는 의미도 있지만 독창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브루클린 공장건물에서 시작한 이씨 부부의 신혼시절은 혹독하게 춥고 가난했다. 그리고 가난은 신혼시절로만 그치지 않았다. 미술명문 프랫대학과 뉴욕대에서 각각 석사학위(MFA)를 받은 이들이지만 전업 작가로서의 삶은 요원했다. 이일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10여개의 직업을 전전하며 자신만의 ‘볼펜 드로잉’화법을 연마했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인 이수임씨는 겨우 짬을 내 식탁에서 조그만 종이에 드로잉을 해나갔다. 그렇게 화려하게 타오르지는 않지만 꺼지지 않는 은근한 불씨 같은 열정으로 힘든 세월을 견뎌온 이들은 지난해 의미 있는 전시회를 각자 열었다.


이일씨는 산호세 미술관에서 한국 화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가진데 이어 퀸즈미술관 전시회로 인해 뉴욕타임스의 호평을 받았다. ‘무수히 많은 볼펜의 선으로 최면에 걸리는 듯한 작품’을 만든다는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접한 한국 언론들도 새롭게 떠오르는 또 한명의 재미 작가소식을 앞다투어 전했다. 이씨는 “이제야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앞으로의 작업에도 동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수임씨도 3년만의 개인전을 통해 “일기를 써내려 가듯” 그렸다는 20여점의 작품들을 뉴저지 옴스 갤러리 등에서 전시하며 뉴욕 한인미술계에 잔잔한 화제를 불러왔다. “남자들을 잘 만난 것 같다.” 고 이수임씨는 말한다. 남편의 작업을 위해 생활비를 버느라 미술을 포기한 아내들, 부자 남편을 만나 여유가 있어도 열정이 식어 그림을 그리지 못한 아내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딸이 가난한 화가의 아내가 되는 걸 반대하지 않았고 좋은 화가가 되라고 항상 격려해주셨어요. 남편도 자신은 힘든 일을 하더라도 나에게는 작업을 멈추지 말라고 늘 말해줬습니다. 이순임씨는 글을 참 잘쓰는 화가이기도 하다. 이씨가 쓴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면 가만가만 말하
면서도 재밌게 얘기 잘 하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리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와인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자주 나눈다는 이씨 부부의 일상이 그려지기도 한다. 서로의 작품에 대해서 혹은 아이들에 대해서 조곤조곤, 가만가만 얘기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박원영 기자>
w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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