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봄은 오는가

2008-03-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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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새벽에 문 밖으로 나선다. 상큼한 찬 공기가 몸속까지 파고든다. 밤새 쭈그러들었던 마음을 펴야 한다. 희망의 아침 노래라도 불러야 한다. 얼마나
고된 하루하루의 일과였던가. 겨우내 한 팔도 잃지 않은 나무들이 꼿꼿이
서서 버티고 있는 것을 보라. 뜰에 파란 잎을 키우고 어여쁜 노란 꽃을 피운 들꽃의 용기를 보라.
그래도 올 겨울의 아픔을 지울 수 없음은 불로 태워 사라진 고향의 문 때문이다. 고향의 집도 그랬다. 어머니가 돌아올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시며 대문만 바라 보셨을. 어머님도, 대문도 집도 사라져 간지 오래다. 늘 그 문을 지나야 서울을 갔다 싶었는데, 이제는 서울 전부가 타 없어진 것처럼 아파서 못 견디겠다.
또 하나 이 겨울의 아픔도 그렇다. 악몽처럼 되살아난 처참한 대학 캠퍼스의 비극이다. 엄청나게 피를 흘리게 한 동포 학생에 대한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왜 그랬어야만 했을까. 생각하고도 싶지 않은, 그러나 낡은 상처에 또 상처를 더하고 있지 않는가.
일곱살 아이가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은 후 학교를 불태운다고 해서 입원했다. 이 금발머리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심히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그 소년은 이 아픔을 품고 자랐다. 동생을 더 사랑하는 부모님을 아프게 하기 위해 자기 팔에 상처를 낸 여자 아이는 10살 된 귀여운 소녀다. 20세의 청년은 병원을 나설 수가 없다. 마약업자들이 그를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 때문이다. 문에 불을 지른 할아버지도 그랬다. 정부가 자기의 땅을 착취했다는 분풀이로 애석하게도 길고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온 역사의 문을 몽땅 태웠다.
건너 집 지붕위로 흰 달이 반쯤 걸려있다. 간밤에 내린 비가 웅덩이에 고여
유리처럼 맑게 얼음이 되어있다. 틈틈이 어느새 파랗게 자란 잔디 위에도 서리가 하얗게 덮여있다. 진정 새들이 동네를 떠나버리기라도 했다면 봄은 오다가도 어디엔가 멈춰 있는 거다. 저기 키 큰 나무가 쓰러져 가냘픈 나무에 기대어 긴 겨울을 끄떡없이 지나고 있다. 저런, 말을 못해서 그렇지 사람이라면 동네가 떠나가도록 자기 자랑을 했을 법 하겠건만.
고국에서는 그 추위에도 그 아픔의 기름덩어리가 엉키어가면서도 새 대통령이 아픈 손들을 어루만지며 새로운 출발을 한다니, 또 북쪽에선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꽝꽝 얼어붙은 북쪽 나라에 따뜻한 봄 계절을 선사한다니, 봄은 정녕 오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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