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소식과 군단 비상령(상)

내가 쿠데타 소식을 들은 것은 1961년 5월16일 아침 4시경이었다. 나의 6
군단 예하 4개 사단(8, 25, 28사단과 미 1군단 직접지휘 하의 20사단)은 작전상으로는 미 1군단에 속하며 행정상으로는 당시 유일의 제1 야전군에 속하고 있었다. 1960년 5월16일에 있을 야전사 산하 사단장급 이상 회의 관계로 해당 지휘관들은 15일 야전군에 모이게 되었다. 5월 17일은 야전군 산하 사단 대항 운동시합이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비상 소집되어 군사령관실에 간 것이 16일 아침 4시경으로 기억이 된다. 서울에서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6군단 포병단이 이에 가담, 서울을 점령했다는 짤막한 설명이었다. 회의다운 회의는 없이 빨리 부대로 귀환하여 부대를 장악하되 부대가 더 이상 쿠데타 군에 합류 못하게 하기 위해 부대 비상령을 내리지 말라는 군사령관의 지시가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박정희 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선 공산혁명이 아닌가를 의심 아니 할 수 없었다. 나는 군단 포병이 야외 훈련을 빙자하여 서울로 진입해 일종의 피고 군단장이 되어 발언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였다. 채명신 장군의 5사단이 가담됐을 거라는 의심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후일 후회한 일이지만 지휘관이 모인 자리에서 알려진 상황을 기초로 쿠데타에 대한 야전사의 입장이 정해졌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 되었다. 서울에 있는 참모총장이 쿠데타 군에 의해 자유를 잃게 되면 야전사 사령관이 비상시국에 대한 군권을 갖고 있으며 수도 비상시의 동원 계획도 야전사를 중심으로 수립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는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밝아오는 고요한 하늘을 L-19 비행기로 원주에서 포천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비행기에 오른 나는 군인으로서 나의 마지막이 오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쿠데타가 실패해도 많은 부하 장병들의 희생 위에 군문에 남을 수 없는 것이 내가 아는 지휘도이다.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나는 국가 위기를 조성한 책임을 지고 역시 군문을 떠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나는 국가 전복세력과 서울을 향한 공산군의 진격로 사이에서, 원칙과 편법, 합법과 불법, 쿠데타 군에 가담된 부하 장병들의 장래, 그리고 국가에 대한 나의 책임과 나의 장래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묘안을 발견 못 한 채 개인을 떠나 국가 비상시 6만의 군 지휘관으로서 떳떳한 행동이 역사에 남아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고민하는 동안 비행기는 포천에 도착하였다.
군단에 도착하여 들은 사항은 군단 포병 5개 대대 중 8인치 포 대대를 제외한 4개 대대가 사전 계획된 야영 훈련을 위장, 서울에 진입하였고, 군단 작전참모인 홍종철 포병 대령과 포병부장 최 대령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군단 전방 적진에서의 무전 교신량이 상당히 늘고 있다는 상항 보고가 있었다. 나는 당장 군단 장병을 소집시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훈시를 하였다. 즉 나도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쿠데타의 성격 및 내용과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지 못하다. 나는 여러분들보다 연장자이며 내가 갖고 있는 방법을 통해 충성된 국민으로서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 국가 위기에 각자의 애국심은 계급을 초월해 다 같다고 본다. 장병 중 국가 문제로 나에게 진언하고자 하는 자는 지금부터 계급에 구애 없이 군단장에게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러나 정식 참모 계통을 벗어나 나에게 직접 의견이나 조언을 해준 부하는 없었다. 또 소집된 참모 모임에서는 나의 개인 장래보다는 국가위기 시 6만 군대의 장으로서 떳떳한 처사가 역사에 기록되도록 건의해 달라는 지시를 주었다. 불명확한 서울의 쿠데타 사정에 적의 심상치 않은 무선 교신의 증가로 보아 야전군의 부대 비상을 걸지 말라는 처사는 나의 입장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6군단은 작전상으로는 야전군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전 군단에 비상 명령을 내렸다. 군단 비상령은 군단 예비사단(8사단)의 1개 연대 전투단을 출동 태세로 사전 계획된 U 지역에 자동 집결토록 돼있었다. 이 조치가 후일 나와 8사단장 정강 준장의 가장 중요한 반혁명 죄목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