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복된 만남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2008-02-22 (금) 12:00:00
지준호목사(헌츠빌침례교회)
푸르른 창공에서 수십만 마리의 검은 크라우들이 대지를 컴컴하게 물들며 일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가는 다시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더니 이 무리가 갑자기 땅을 향해 곤두박질을 치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왼쪽 창공으로 치솟는다. 어느 샌가 이들은 서로가 반으로 나뉘어서 날다가 또 여러 군으로 나뉘어 잘룩 잘룩한 모양을 만들며 하늘을 온통 새떼들로 덮는다. 그러다가 다시 이 크라우들의 무리들이 두루마리 말듯이 두르르 말리는 듯 하다가 무질서하게 또 흩어진다. 수십만 마리의 새떼들이 겨울 하늘에서 살아있음과 만남의 환희를 즐긴다.
이렇듯 수많은 무리들이 떼를 지어 만나는 만남은 아름다움과 경이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때로는 이와 반대로 만남이 아픔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환희와 슬픔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만남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이 된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만남을 분별하여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 주어진다. 따라서 주어지는 만남들이 “어떠한 것들이냐?” 그리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의 가치와 행복의 수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좋은 만남을 위하여 좋은 스승이 있는 학교를 찾는다. 그리고 좋은 가르침이 있는 교회도 또한 찾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아무런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만남이 나에게 찾아올 때도 많다. 이러한 만남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은 좋은 만남을 찾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된다. 우리의 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러한 만남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만남을 복되게 만든 사람들을 소개를 하기도 한다. 베드로, 사도바울, 요한, 야고보, 우물가의 여인, 십자가 옆에서 만난 강도 등등...그러나 한편으로 복의 근원과의 만남을 오히려 저주스럽게 만든 사람들을 소개도 한다. 가롯 유다,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제사장 등등...이처럼 세상에는 복된 만남을 오히려 저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복된 만남을 통하여 무명의 사람이 유명으로 변하고 무가치한 사람이 가치 있는 인물로 변하는 경우도 또한 있다.
이렇게 복된 만남을 위하여 말과 삶에 녹아져 있는 보이지 않는 상대의 믿음과 인격과 실력을 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하여 만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는 일은 복된 만남으로 발전하기 위한 진정한 가치가 된다. 말로는 누구나 천사도 될 수 있고 거룩한 사람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또한 만남을 복되게 만들기도 하고 저주스럽게 만들게 되기도 한다. 즉 내가 진실한 사람이라면 진실한 사람과의 만남은 더 깊어지고 지속이 되지만 진실치 못한 사람은 저절로 나를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복된 만남의 상대를 오히려 잃게 되고 만나지 않으면 좋을 만남을 더 깊게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지는 만남들 가운데서 진정한 생명 있는 인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복된 만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더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연출하게 되고 가치 있는 일들을 하며 행복해 지는데 가속이 붙는다. 이렇듯 행복과 참다운 가치와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만남을 위하여 좋은 상대를 찾는 일은 우리
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위하여 나의 인격과 가치관을 바르게 만들어 가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