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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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지도

2008-02-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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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산학을 가르친다. 그래서 학생상담시간에 이곳 중서부 학생들과 세계문화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일이 없다. 내가 다루는 ‘자바’는 프로그램 언어이지 인도네시아의 섬이 아닌 것이다.
그렇긴 해도 아주 가끔씩 그런 기회가 있기는 하다. 내 사무실 벽엔 서울 지도가 걸려있다. 한글로 씌어졌지만 지도 속의 한강 줄기가 우리 도시의 오하이오 강 줄기와 너무나 똑 같기도 해서 걸어 놓았다. 우리 도시의 규모가 작고 강의 남쪽 언덕의 우리 학교에서 강북을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지형이 좀 다르긴 해도, 학생들은 그 지도를 우리 도시의 지도로 여긴다. 우리 학교의 위치와 맞먹는 성남시쯤에 핀까지 꽂아 두었으니 더욱 그럴 밖에.
지난 달 한 전산과 학생이 내 사무실에 왔다가 지도를 보더니 외쳤다.
“아니, 이거 서울 아니에요? 저 거기 살았었어요!”
뜻밖에 맞은 즐거운 서프라이즈였다. 내가 물었다.
“언제 살았었는데?”
“90년대 중반에 살았어요. 군인이었죠. 서울은 꼭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 같더라구요.”
“뭐? 마나과?”
90년대 중반을 포함해서 수차례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는 나로선 서울을 마나과에 비교하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서울과 가장 다른 도시로 비교한다면 모를까. 실제로 마나과는 서울과 가장 먼 도시이다. 내가 가본 적은 없지만 1997년에 가본 적이 있는 친한 친구들과 아내의 얘기를 들어 봐도 그렇다.
학생들 대부분이 서울이라면 뛰어난 산업기술과 폭력영화를 얘기하면서 ‘최고의 전산망 산업국’이라 말하는데, 도대체 그는 서울에서 무엇을 보고는 불행하기 짝이 없는 니카라과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이유를 물었다.
“아, 가보셨다니 다 보셨을 것 아니에요. 거리의 무숙자들 말이에요.”
글쎄. 작년에도 서울역 주변에서 많은 무숙자들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미국의 어느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닌가.
지난 주 국보1호 숭례문의 안타까운 화재 사건을 다룬 몇몇 신문기사들이 남대문 근처의 무숙자들을 거론했을 때 다시 이 학생이 생각났다. 세상에! 한국에서 본 한 작은 구석을 한국 전체로 여기는 답답한 친구라니. 7,0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가서 일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었건만 기억나는 게 무숙자들뿐이란 말인가?
나는 가끔 세계의 문화를 볼 기회가 전혀 없는 이곳 주류 미국 학생들을 ‘우물 안 개구리’라는 한국 격언에 빗대어 말한다. 외국에 간다 하더라도 좁은 안목을 갖고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의도적인 안목 훈련을 해야 외부세계의 빛 속에서도 멀리 볼 수가 있다. 그동안 미국문화를 보는 한국인들의 오해도 많았고 한국문화를 보는 미국인들의 오해도 많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주류 출판물에서 잘못된 문화정보를 읽는 일이 적어진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각 개인을 대할 때는 아직도 왜곡되거나 완전히 잘못된 경험들을 듣기는 하지만.
2주 후 봄방학이 되면 학생들과 함께 커뮤니티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멕시코로 떠난다. 많은 사람들은 멕시코라 하면 저학력자들이 불법으로 미국국경을 넘는 나라라는 추상적 선입견을 갖는다. 혹자는 칸쿤 같은 고급 휴양지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의 이 프로그램은 학생 하나하나를 그곳의 호스트 가정에 숙박케 하여 문화를 보는 좁은 안목을 떨쳐버리게 한다. 그들 대개는 그 가족들과 평생 친구가 된다.
지난 주 서울, 쾰른(독일),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한 세계문화에 대한 나의 초청강의가 있었다. 그 학생을 초대했지만 불행하게 그는 오지 않았다. 그의 얘기를 듣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 서울을 마나과와 같다고 믿어버릴 것을 생각하면 허탈해진다. 집집마다 연결된 이 시대에 살면서도, 아직도 잠깐의 첫인상에 묶여버리거나, 잘못된 지도로 상황을 판단하거나, 우물 안 개구리 처럼 생각하는 인간의 능력 혹은 무능력이 참 무섭기조차 하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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