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바마 혁명과 미주한인

2008-02-18 (월) 12:00:00
크게 작게
열매 맺기 시작하는 다문화 교육

제 44대 대통령 예비선거는 우리에게 예측을 불허한다.
미국 건국 이래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당선되는가 했더니, 현재로서는 버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 백악관으로 한걸음 성큼 다가간 듯하다. 이는 오늘날 미국사회의 기성세대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가히 ‘혁명적인 대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두 번째 자서전 ‘Audacity of Hope’에서 보듯, 그의 ‘대담한 희망’이 거의 실현단계에 놓인 것이다. 오바마 의원은 민주당 대통령 예선을 거친 전체 35개주 중 23개주에서 승리했으며, 민주당 대통령 지명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2,025명의 대의원 중 1,223명을 확보하여,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1,198명을 앞질렀다.
이 혁명적인 대운동이 일어나게 된 요인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오바마 의원은 인종적으로 반쪽 흑인(bi-racial)이다. 그런 점에서 양부모가 모두 흑인인 사람보다는 기성세대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다소 받아들이기 쉬울지도 모른다.
둘째, 오바마 의원은 Eagle Rock의 Occidental College를 2년 거쳐, 컬럼비아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나온 재원이며, 법대 재학 때 Harvard Law Review의 최초의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되었을 정도로 타의 추종이 쉽지 않은 우수한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언론계 및 각계에 학연이 깔려 있어서 측면 지원을 받는다고 본다.
셋째, 시청률이 아주 높은 토크 쇼 진행자 흑인 오프라 윈프리를 필두로, 민주당 중진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냈으며, 선거운동을 각주에 기존하는 조직을 활용, 효과적·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에 두 권의 자서전(‘Dreams from My Father’와 ‘Audacity of Hope’)으로 이미 자신의 태생과 정치철학, 사회활동 등을 솔직하게 온 세상에 알렸기 때문에 그의 출생과 가족관계 등에 대해서 기자들의 질문을 더 받지 않아도 된듯하다(그는 본부인을 케냐에 두고 온 흑인 아버지와 캔사스 출신의 미혼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 재혼 후 인도네시아에서 4년 산 후, 하와이의 외가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및 옥시덴탈 칼리지 시절에 느꼈던 인종차별 및 외할아버지와의 갈등, 혼혈아로서 정체성 확립이 어려워 방황했던 일, 잠시 동안 마약에 손댔던 것까지도 꾸밈없이 기술했다).
다섯째, 그동안 소수민족 교육자들의 꾸준한 연구 활동과 지속적인 노력으로 다문화 교육을 지향한 지난 20여년 동안의 각급 학교의 교과 내용개편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본다.
다문화 교육을 받은 현재 20~30세인 신세대들, 특히 백인들까지도 자기와는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관용과 이해를 보일 줄 아는 건전한 젊은이들로 성장했다고 본다. 현재 오바마 의원의 지지 세력은 주로 20~30대의 젊은층으로, YouTube 등 컴퓨터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고학력의 부유층이다. 주류 언론들은 이 현상을 젊은 세대의 보다 개방된 가치관에서 찾아 보려한다.
그러나 한 세대의 가치관이나 시대정신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지난 20여년 동안 전국 교육대학의 재인가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는 다문화 교육을 필수요건의 하나로 중요시해 왔으며, 이는 곧 초·중·고등학교의 사회·영어 및 기타 과목에서 다문화 교육을 실시하는 계기가 되어왔다. 다문화 과목은 전국의 대다수의 대학에서 졸업 필수과목이 된지도 오래다. 한 나라의 인력수급 계획이 교육정책으로 실시되듯이, 다문화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이 상대방의 피부색에 덜 민감하고, 상대방을 인격과 능력 위주로 판단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젊은 층들이 인종적인 배경을 떠나 오바마 의원이 제시하는 국정방침에 귀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재미 한인 자녀들이 보다 화합된 미국 사회에서 살게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