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스로 책임지는 가치가 소중

2008-01-2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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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부모와의 만남

2008년 새해부터 경제 문제로 야기된 가정불화로 인한 한인가정의 총격사건으로 한인사회가 떠들썩했다. 더욱이 겉보기에는 화목한 가정이어서 듣는 이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이렇게 심심하면 터지지 가정문제로 부모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쥐고서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이시다.
그래도 나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힘들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의 등을 토닥거릴 수 있는 여유가 좀 생겼다.
내가 부모님들에게 바라는 새해의 소망은 자녀들이 껍데기를 벗어나며 겪는 부모들의 따끈따끈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나누고 싶다. 그것은 이민 생활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부모 각자의 어깨에 둘러 멘 짐을 나누어질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생각이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그녀의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된 부모교실을 통해서였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미국생활의 안정과 미래를 꿈꾸는 그녀의 탱탱한 30대를 옆에서 꼬박 지켜보았었다.
아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에 열병을 앓았으며 이것저것 자로 재며 이기적인 사랑을 택하기보다는 그녀의 이상대로 바람대로 당당하게 맞서 나갔다. 그리고 그 가늘고 긴 인연이 나와 닿을 때면 또 다른 일이 그녀 주위를 맴돌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녀가 아들과 함께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녀가 커가면서 그녀는 아들과 자신을 위한 아담한 보금자리 마련을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밤낮으로 열심히 뛰었었다.
스스로 일어서고 싶어 몸부림치는 그녀를 옆에서 조심스레 지켜보면서 나는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넘치는 감사함으로 종교에 푹 빠져 그녀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보이기도 했었다. 한 때는 심리학 공부를 해보겠다며 대학원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했었고 그 후 그녀와 잠시 소식이 끊겼으며 나는 그녀가 또 열병을 앓고 있는 거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간절함이었고 스스로 원하는 삶에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었다.
얼마 전 해가 바뀌었음에 메시지를 남겼더니 즉시 연락이 왔다. 그녀를 마주하며 바라본 첫 느낌은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또 뭔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그 피 터지는 숨 가쁜 30대가 지나간 조금은 느슨해진 40대 초반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었다.
돌고 돌아 이제야 만난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상처투성이뿐인 두 영혼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았다는 그야말로 소설 속의 주인공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폭포수 같이 거침없이 쏟아 부었던 그녀의 마지막 몸부림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해묵은 상처를 덮어버렸다.
그동안 자녀를 키우면서 고민하고 그녀 스스로가 서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날개짓을 뒤로하고 그 사랑 앞에 몸을 수그리고 그 속에 숨어버렸다. 이제 나는 그녀가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가길 바란다.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게 용서가 되었던 것처럼 이제는 가족이라는 그 묵직한 힘을 디디고 힘차게 일어서길 바란다.
Make it happen 이든 Let it happen 이든 그것은 본인의 의지이며 선택의 문제이다. 본인 스스로 선택한 삶은 자신이 그 삶의 주인이며 적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시간에 끌려가기보다는 분명 스스로 책임지고 그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다, 그녀처럼.
사랑의 전도사가 되어 불쑥 나타난 그녀는 지금 마냥 행복해하고 있다. 요즘은 첫사랑을 마음 한 구석에 찌릿하게 남겨 두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지대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요즘 코드이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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