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 둥지의 못 다한 사랑

2007-10-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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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주일은 하루 종일 집전화기와 셀폰에 귀를 기울이며 지냈다. 그렇게 기다렸지만 전화들은 한 번도 그곳 번호로는 울려 주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보고픈 마음으로 틈틈이 눈물만 찍어냈지만 오늘은 섭섭함이 심해지며 화까지 났다.
지지난 주말, 대학 신입생이 된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3시간 운전하고 가서 입학식에 참석하고 기숙사에 짐을 옮겨주었다. 저녁을 먹은 후 하나 뿐인 아이를 두고 떠나는데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다. 아빠보다 훌쩍 더 커버린 아이는 씩 웃으면서 장대 같이 서서 어린애 다독거리듯 나를 몇 번이나 안아주었다.
평소에 병원을 모르고 지내던 아이가 집 떠나기 2주 전에 무척 아팠었다. 한국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꼭 1주일 동안 고열, 복통과 함께 구토를 했다. 의사 말로는 독감이라는데 죽도 못 먹으며 앓더니 몸무게가 10파운드 이상 줄었다. 그때 아이는 퀭한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학교에 가서 아프지 않고 편한 집에서 엄마가 시중을 들어주니 얼마나 참 다행이라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 나름대로는, 네가 아팠던 것은 안 됐지만 그 동안 네게 충실치 못해서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떠나기 전에 나의 시간, 정신, 노동의 100%를 네게만 쏟을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행복하기조차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그저께 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한다. 남편은 필요한 게 있다고 전화한 것이니 질투하지 말라 했다. 아팠을 때 집이 그렇게 편했고 엄마가 옆에 있는 게 좋았다면, 편할 때도 조금은 생각나지 않을까?
아무리 새 자리에서 새 사람을 만나고 새 생활을 한다 해도 가끔은 엄마 생각이 날텐데. 어제는 참다못해 전화를 걸어 메시지를 남겼는데도 오늘 온종일 전화가 없다. 이 느낌을 뭐라고 할까? 배신감?
아이들을 대학 보낸 지 몇 년 됐거나 졸업 시킨 친지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아이들도 대학 가더니 그렇게 연락이 없었냐고 물었다. 딸 갖은 이건 아들 갖은 이건 모두들 한바탕 웃으며 우리 아이들도 그랬노라며 일찌감치 포기하란다. 위로의 말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 소리에 그나마 좀 진정이 되었다.
밥은 제대로 먹는지, 파티 하느라 늦잠자고 결석하지는 않는지, 교수들에게 잘 보이고는 있는지 등 궁금한 게 한 두 가지 가 아니건만, 정작 아이로부터 연락이 없어 안달하던 중 ‘아차’ 싶었다. 아이가, 내가 근무하는 대학은커녕 동네의 어떤 대학에도 응모조차 안 했던 것은, 엄마의 그런 집착을 예견했기 때문이었을까?
지난 달 NPR 방송의 ‘Talk of the Nation’ 프로그램에서 ‘헬리콥터 부모’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학생이 된 아이의 머리 위를 맴돌며 학교생활, 성적 등을 참견하는 부모들에 대한 얘기였다. 내 자신도 직접 전화를 걸어와 성적에 대해 걱정하거나 따지는 부모들을 상대하면서 학을 떼었던 터라 관심 있게 듣다가, 나도 이제는 부모 입장이 되니까 조심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
어제부터 이층의 카페트를 뜯고 나무 마루를 드러내는 공사를 시작했다. 일을 맡은 사람이 두 청년을 데리고 왔는데 밥도 안 먹으며 열심히 일을 했다. 알고 보니 동유럽에서 온 학생들로 여름방학을 이용해 미국에 돈을 벌러 온 것이었다.
돈을 아끼느라 때를 거르는 것 같은 그들이 안타까워 아이가 좋아했던 샌드위치와 간식을 며칠 간 열심히 만들어 주었다. 아주 고맙게 먹다가 엄마 생각이 난다며 웃는데, 그들의 미소 속에서 내 아이의 미소를 발견했다. 내 못 다한 사랑을 대신 받아주는 그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아이도 어디에선가 문득문득 내 생각을 하겠구나, 깨달아졌다.

김보경 북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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