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현실과 똑같은 소설

2007-09-22 (토)
크게 작게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정이현소설은 잘 읽힌다. 그래서 잘 팔린다.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발간된지 1년이 넘었는데도 항상 한국 소설 코너의 베스트셀러 자리에 상주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초기작이라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로 정이현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뒤에 써낸 두번째 소설집인 ‘오늘의 거짓말’은 제법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순풍에 돛 단듯 팔리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정이현 소설을 2~30대 여자들의 취향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Sex and the City’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류의 Chick-Lit(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과 문학의 literature를 합성해서 만든 단어)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정이현의 소설은 2-30대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삶을 주로 그리기는 하지만, 기실 개발독재시대를 넘어서 IMF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 전체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꽤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정이현의 소설은 평론가 박혜경의 말대로 “끊임없이 욕망 뒤에 숨은 파국의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아슬아슬하게 사는 우리네 모두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요즘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 신정아 사건도 황소가 되길 욕망하던 작은 개구리, 아니 자신을 황소라 믿어버린 작은 개구리의 배가 터져버린 것인데 욕망과 파국이라는 공식에 대입해보면 정이현 소설과 너무 잘 들어맞는다는 점에서 섬뜩하기까지 하다(그 제목 또한 ‘오늘의 거짓말’이다).
다만 그 속도가 소설의 상상력을 찜 쪄먹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펌프질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바람이 빨리 들어가서 30대 초반 여성이 문화계의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소설가들이 언론의 가공할 영향력과 이로 인한 산사태 효과까지 감안해서 작품을 쓴다면 소설이 (흥미위주의) 보도에 밀리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으련만……

이형열(알라딘 서점 대표)
www.aladdinus.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