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조상의 유물

2007-09-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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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몇 년 전 아내의 어릴 적 친구가 한국에서 우리를 방문했다. 우리 집을 처음 본 그녀는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같은 값 아니 더 적은 값으로 외곽 지역의 넓은 땅에 새로 지은 집을 살 수 있는데도, 도심지의 작은 땅에 100년이 넘은 집(우리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집’이라 즐겨 말한다)을 원해서 샀다니까 그럴 밖에. 그녀 자신은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를 사서 한국의 실내장식잡지에서 보는 집들처럼 멋지고 값비싸게 리모델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도 했으니.
집에 들어서면서 아래층의 한국식으로 꾸민 거실과 미국식으로 장식한 식당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층 손님방을 보면서는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아내와 워낙 형제처럼 친한 친구인 그녀는 내 앞에서는 감히 그러지 못하고 나중에 아내에게만 한 마디 했다 한다. 어째서 방을 그렇게 싸구려로 구차스럽게 꾸며 놨느냐고.
‘싸구려로 구차스럽게’라니? 하긴 어느 나라에서도 그 방을 고급 실내장식 잡지에 소개하지 않을 건 분명했다. 도대체 그 방에 무엇이 있었을까?
결혼 후 첫 아파트에서 산 첫 가구로 아이가 뛰놀며 컸던1980년대 스타일의 싸구려 하얀 소파. 아내가 유학 오자마자 디트로이트의 거라지 세일에서 샀다는 1970년대 스타일 커피 테이블. 나의 부모님이 내가 갓난아기였던 1960년대에 디스카운트 스토어에서 샀다는 램프. 1940년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외할아버지가 당신 땅에 자라던 커다란 진갈색의 호두나무를 잘라 만들게 했다는, 그리고 후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 썼던 침대. 그 할아버지가 1930년대에 부하직원으로부터 샀다는 1900년대에 만들어진 벽걸이 시계. 1800년대 중반 흑인노예가 만들었다는 고조할아버지의 유리책장. 고조할아버지의 어머님이 쓰셨다는 물레.
그 물건들의 스타일과 만들어진 솜씨는 TV의 골동품 쇼에 나올 만큼 섬세하고 전문적이지 못하다. 그중 어느 것도 멋과 맵시는 없지만, 나름대로 얘깃거리를 담고 있다. 적어도 난 그것들 모두가 각각 20년 혹은 200년 동안 어떤 집에 놓여 있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들 즉 내 조상들의 이름과 생애를 알고 있다.
나는 1850년도에 물레의 살을 잡고 마구 돌리다가 엄마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는 5살짜리 고조할아버지를 생각하곤 한다. 그 110년 후에 내가 똑같이 그랬으니까. 1960년대 디스카운트 스토어에서 산 램프는 정말 볼품이 없다. 그 가게는 없어진지 오래되었고 그 빌딩조차 40년 전에 허물어 졌다. 어쨌든 나도 그 램프의 못생김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당시 젊었던 부모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 가다가 램프가 놓인 곳을 지날 때면 들리곤 했던 마루 삐걱거리는 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의 제사처럼 조상을 기리는 의식이 없다. 우리는 가문의 창시자를 시작으로 가계 혈통을 기록하여 장자에게 전하는 족보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조상은 우리의 삶에 존재한다. 미국의 많은 가족들이 그렇듯 우리도 몇 년에 한 번씩 대가족 모임을 마련하여 증조할아버지의 자손 모두가 장, 단거리 여행을 해서 만난다. 친가 혹은 외가의 구별도 없다. 그 증조할아버지는 나의 어머님의 어머님의 아버님이시다. 우리들 중 어떤 자손은 가족사, 각 조상의 사적 얘기, 유물에 관심이 많지만 어떤 자손을 그렇지 않다.
유물이 있고 이야기도 있을 뿐 아니라 감정도 존재한다. 나의 타계하신 이모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남북전쟁 얘기를 듣곤 했다는 말씀을 자주하셨다. 그분은 남부를 위해 싸웠다 한다(나의 친가 쪽 조상 중 많은 분은 북부를 위해 싸웠다). 이모할머니는 1990년대 돌아가실 때까지 전쟁 후 북부가 남부에게 무척 불공평 했다고 불평하셨는데, 그 말을 하실 때마다 두 세기를 사시며 품은 ‘한’에 대한 분노를 토하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시곤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조상들의 감정보다는 유물이 더 길게 살아남는다. ‘물질주의’의 일종이긴 해도 바람직한 물질주의다. 이 물질주의는 위로도 주고 연결의 고리도 된다. 고조할아버지의 어머님 손을 잡을 순 없어도, 그 분이 만졌던 것을 나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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