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물의 시, 오브제 예술

2007-09-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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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황소의 모습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오브제를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르셀 뒤샹은 변기를 화랑에 가져다놓고 ‘샘(fountain)’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미 100년 전 일이다.
요즘은 가히 오브제 예술의 세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예술가들이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릭으로 대상을 그리는 대신 오브제를 사용한 예술품들을 창조하고 있다.
오브제는 왜 현대의 예술가들을 그토록 매료하고 있는 것일까.
사진의 발달과 추상화의 출현으로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작업이 무의미해지고 대상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그리는 대신 직접 사물을 사용하는 게 현대미술의 전개방식에는 필연적 귀결인 듯하다.
12월30일까지 할리우드 불러버드와 버몬트에 위치한 반스델 팍 갤러리에서 ‘Humor Us’ 라는 타이틀로 20여명의 아시안 아메리칸 작가들의 작품 1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오브제를 사용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칫솔, 날아 움직이는 머리카락, 롤러코스터와 달팽이 등 세 점을 출품한 고병옥은 앤드루 샤이어 화랑에서 10월6일까지 사진과 오브제 작업으로 개인전을 하고 있다.
상품 가격표가 붙어있는 자전거와 그 자전거를 살 때의 대화. 공기청정기 하나만 놓여있는 전시 공간. 책상에 몇 달 동안 쌓인 먼지. 의자에 고인 물. 하얀색깔이 다 칠해져 있어 시간을 알 수 없으나 초침 소리는 나는 시계. 문이 유리로 대체된 냉장고 - 하얗게 비어있는 냉장고 속이 보이고 유리문 앞쪽에 습기가 서려있다.
두개의 유리컵 속에 들어있는 시계 - 시계추가 유리컵에 닿아 초침소리가 난다. 불이 켜져 천장을 향하고 있는 전등. 선전용 껍질을 다 벗겨 메탈색만 남은 코카콜라깡통. 천장에 매달려있는 길게 이어진 머리카락 한 올 - 스스로 움직인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업의 목록인데 그의 작업을 한번 보고나면 오래 마음에 여운이 남는다.
순수한 영혼의 극치까지 밀고 간 고심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작업이 개념미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순수한 영혼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그의 작업을 보면 “이게 예술인가?” 하는 질문 보다는 “아! 이런 게 예술일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런 경이와 웃음을 선사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동시에 평상시에 별 관심 없이 사용하던 사물들을 잊을 수 없는 사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사물에 내재하는 시적여운을 이끌어낸다. 공기청정기를 볼 때는 “아, 나도 맑은 공기를 맡고 싶어” 하는 생각이 났고 젖은 의자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리 없는 전율이 일었고,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는 소외와 불안의 캄캄한 시간을 연상시킨다.
아침에 칫솔질을 할 때마다 그의 칫솔작업<사진>이 생각나 웃음 짓는다. 커다랗고 높은 천장의 하얀 벽에 그 작은 두개의 칫솔이 맞물려 붙여져 있던 게 무척 놀랍고 재미있었다.
추상화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이것도 예술이냐”고 반문하던 대중들도 이제는 추상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한인타운의 상업화랑으로서는 용기 있는 기획임에 분명한 그의 작업을 보고 많은 분들은 “이것도 예술인가”하고 반문할 듯하다.
예술가들은 이미 아는 작업이 아닌 미지의 작업을 모색한다. 상상하건 데 어떤 예술가들은 이미 이 오브제 작업들보다 더 새로운 작업을 창조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아는 길은 버리는 게 예술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다음엔 고병옥이 어떤 작업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박혜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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