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시민

2007-09-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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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만드는 것이 교육의 궁극 목적

이민 1세로 처음 미국 학교에 근무하게 되면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두 나라의 교육 목표의 차이였다.
한국에서 듣고 자랐던, ‘홍익인간’ 이라든가, ‘반공’ ‘민족중흥’ 같은 구절이 떠오르면서, 미국 공립학교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을 “좋은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듣고 적지 아니 놀랐던 것이다.
과잉 교육열 때문에, 정상적인 공교육이 파행된 듯한 한국사회의 실태를 보면, 과연 한국의 학생들이 홍익인간이 되기 위해서 또는 민족중흥을 위해서 이 같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이런 원대하고 추상적인 교육목표 이면에는, 수백 년 동안 한국인 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힌 입신출세에 대한 열망이 자리 잡고 있고, 이 열망이 바로 대다수 국민의 교육 목표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교육의 목표는 결국 출세하는 것이라는 대중적 가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미국 공립학교의 교육 목표는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들었을 때 상당히 어리둥절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니, 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을 장래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높은 사람을 만들거나,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로 길러 내거나, 기업 총수로 성공하게 하거나, 적어도 ‘사’자 들어가는 화이트 칼러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겨우 좋은 시민을 만들려고 이렇게 학생들을 닦달을 한다는 말인가? 미국 사람들 참 싱거운 사람들이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비로소 ‘좋은 시민’이 되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이념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얼마나 훌륭한 교육 목표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좋은 시민은 민주주의 국가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좋은 시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질서 있고 합리적인 사회가 보장될 것이므로, 장래의 시민인 어린아이들을 좋은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가장 근본적인 교육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좋은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길러내는 것보다 더 어려울 뿐 아니라, 가정이나 학교에서나 미디어에서, 온통 공부 잘해서 일류대학 가는 것만을 지상 의 목표로 삼는 가치의 혼돈 속에서 살고 있다는데 있다.
좋은 시민은 교통규칙과 같은 사소한 법에서 부터, 남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법을 지켜야 하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야하고, 병역기피를 안 해야 하고, 부정축재도 안 해야 하고, 직권남용도 안 해야 한다.
도덕성과 지도력을 함께 갖춘 인물을 가릴 줄 아는 상식적인 판단력이 있어야 하고, 이웃의 권리를 나의 권리만큼 존중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시민이라는 카테고리에 편안하게 속할 수 있을까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개학과 더불어 12학년 학생들의 대학입학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회에 해를 끼치는 나쁜 사람들 중에는 일류대학 나온 수재들이 많다”라는 어느 냉소주의자의 독설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일류대학에 입학하는 것만큼, 아이들을 좋은 시민으로 길러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학부모들이나 교육자들이나 미디어에서 강조했으면 한다.
좋은 시민이 많은 사회는 곧 우리들의 자녀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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