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중해의 향기’가 온 몸을 감싼다

2007-05-23 (수)
크게 작게
이탈리아 와인

3주 전 본보 주최 할리웃 보울 한인 음악대축제에 가져갈 와인을 고를 겸 평소 자주 가던 ‘트레이더 조’에 들렀다가 흥미로운 와인을 발견했다. ‘Brunello di Montalchino’(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라고 쓰인 레이블의 이탈리아산 와인이었다. 빈티지는 2000년, ‘Poggio Lontano’ 와이너리의 19.99달러짜리였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 아무리 싸도 최소 45달러 이상을 호가하는 이탈리아 고급와인으로 알고 있는데 가격이 20달러라니, 혹할 수밖에 없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예술의 고장, 역사의 보고, 로마제국, 바티칸 등등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수식어들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수천 년 와인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는 프랑스 국토의 60%, 캘리포니아의 3/4에 지나지 않지만 전 세계 와인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와인의 천국이다. 이탈리아인에게는 와인이 생활의 활력소다. 국토 전체가 포도밭으로 뒤덮여 있다. 와인이 없는 식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탈리아 와인에 별로 익숙지 않다. 대부분 이탈리아에서만 생산되는 포도품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친근감이 떨어진다.
네비올로(Nebbiolo), 산지오베제(Sangiovese), 앤글리아니코(Anglianico), 바르베라(Barbera) 등은 이탈리아에서만 생산되는 포도지만 아주 우수한 와인을 만들어 낸다.

전세계 와인의 20% 생산
다양한 맛·향 자랑
토종 포도로만 만들어
친근감 적은 것이 흠

▲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hino)
‘키안티’(Chianti)는 이탈리아 와인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키안티 못지않게 토스카니(Tuscany) 지방에서 생산되는 우수 와인이 바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다.
원래 브루넬로(Brunello)는 키안티 와인의 포도품종인 산지오베제의 지방 사투리이고 몬탈치노(Montalchino)는 ‘성벽으로 둘러싸였다’라는 뜻을 가진 마을 이름이다. 위치는 키안티 지역 남쪽에 있다. 풀이한다면 ‘몬탈치노에서 생산되는 산지오베제 와인’이란 의미다.
그런데 이 와인은 최고 20년까지 숙성시켜야 할 정도로 태닌이 탄탄하다. 그 지역만의 독특한 전통 양식을 고집해 오는데 이렇게 생산된 와인은 마시기 6~7시간 전에 따놓고 공기 접촉을 시켜야 제 맛을 낼 정도로 강하다. 특히 현재 남아있는 5병의 1888년 빈티지 와인은 10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마시기에 아주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곳 와인은 불과 40년 전쯤에서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70년대 초반 이 지역 제일의 와이너리라고 불리는 ‘비온디-산티(Biondi-Santi) 패밀리’가 와인 평론가들에게 1888년산 와인을 내놓으면서부터 세계적인 이목을 끌게 됐다.
와인은 모두 100% 산지오베제로만 만든다. 가격은 솔데라(Soldera) 양조장 제품의 경우 200달러가 넘게 판매된다. Costanti, Canalicchio, di Sopra, Pertimali 제품들은 최소 15~20년 숙성 과정을 거친다.
▲로소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hino)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전통 양조 방식을 고집해 최소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내놓는다. 제조 공정이 많고 오크통 숙성이 길어지므로 가격은 당연히 비싸지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숙성기간도 단축시키고 전통 방식보다는 현대식으로 대체해 다소 저렴한 가격의 몬탈치노산 와인이 생산된다. 로소 디 몬탈치노가 바로 그것이다.
이 와인은 16달러에서 22달러 정도로 판매되는데 포도 품종을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고 산지오베제와 여타 품종을 혼합하기도 한다. 물론 판매가격은 고급 와이너리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비싸다.
▲ Brunello di Montalchino 2000 Poggio Lontano
이탈리아 와인은 빈티지가 상당히 좌우하는데 몬탈치노 마을로서는 2000년 빈티지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닌 것으로 나와 있다. 색깔은 미국산 카버네 쇼비뇽, 멀로등보다 다소 옆은 루비 색을 띠고 있고 피니시는 오픈한지 2~3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길어진다.
와인 품종인 산지오베제는 상당히 강한 신맛을 가지고 있어 입맛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그래서 음식과 페어링이 좋다. 산지오베제 와인은 한국 음식에도 잘 어울리다.
강렬하지 않고, 입에 부드러운 와인을 찾는다면 한 병 구입해 돼지고기 구이를 곁들여 함께 마시면 좋을 것 같다. 카버네 쇼비뇽, 멀로 등 대표적 레드와인 품종과는 다른 포도 품종이므로 색다른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으로 맛을 음미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100% 산지오베제.

<김정섭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