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인 알고 싶다면 ‘클럽’에서 즐겨라

2007-05-0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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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동창 10명안팎 동호인 모임 만들면
술값 부담 줄이고 서로 배우는 것도 많아

와인이 넘쳐난다. 손님 초대상을 장식해온 맥주나 양주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난다. 와인잔을 들어 코에 대고 끙끙대며 향기를 맡은 다음 한모금 물고 오물오물, 그리고는 꼴깍 삼키킨 후 잠시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만 조금 끄덕거려도 주변사람들의 눈길이 확 달라진다. “와인에 내공이 쌓인 고수”를 만났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경이로운 눈으로 주시한다. 대접이 달라진다. 이것이 요즘 와인이 몰고 다니는 세상인심이다. 그렇다고 마구 잡이로 마셔대며 고개를 가로 젓거나 끄덕인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하면 망신살만 뻗친다. “와인을 배우고 싶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정답은 “그냥 마셔봐라”다. 마셔보면 맛을 알 것이고 책 한권까지 탐독하면 ‘경지’는 아니더라도 어디가서 빠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말이 쉽지 집에서 혼자 와인을 홀짝 대봐라. 몇병이나 마실 수 있을까. 잘못하면 알콜 중독의 심각한 후유증에 평생을 시달릴 수 있고 술값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추천하는 것이 와인 클럽이다. 와인클럽을 원한다고 아무나 들어 갈 수는 없다. 전문 와인 학교라면 모를까 대부분 인원을 제한해 신규 회원 가입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요즘은 직장, 동창, 가까운 지인들끼리 소규모로 모여 와인 클럽을 만들어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우선 여러사람들이 모이니 술값 부담이 적고, 여러병의 와인을 한꺼번에 조금씩 맛 볼 수 있어 좋다. 특히 와인에 식견 좋은 회원들로부터 와인 상식도 솔솔 들어보는 또다른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와인 클럽 만들기
클럽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동네에 마음 맞는 이웃이 있다면 10명 안팎으로 동호인 모임으로 해도 좋고 직장이나 동창생들도 좋다. 와인 전문지들에 따르면 10명 정도가 가장 알맞은 숫자로 되어 있다. 와인 한병을 따면 10잔을 만들어 시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회원이 많으면 대화하기도 힘들고 분위기도 산만해진다.
대개는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는 것이 좋지만 성질이 급한 회원들이 많으면 2주 걸러 한번씩 모임을 가질 수도 있다. 1주에 한번씩은 조금 부담이 될 것이다.
와인 클럽의 운영은 와인 상식에 밝은 호스트를 정해 클럽을 이끌어 가도록 하는 방식도 있고 돌아가며 모임때 쓸 와인을 구입해 호스트를 맡는 방법도 있다. 이웃 간의 모임이라면 호스트를 돌아가며 맡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동료, 친구들이라면 고정 호스트를 정해 놓는 것이 더 좋다.
▲와인 선정하기
이부분이 가장 어렵다. 유명 와이너리부터 소규모까지 다양한 와이너리에서 수 만종이 쏟아져 나오는데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막막하게 마련이다.
와인 클래스에서 시음하는 와인들은 대개 15~25달러 선이 적당한 것으로 교과서는 말하고 있다. 너무 고급 와인들로만 채운다면 테이블 와인의 참맛을 모를 것이고 입맛만 높아져 중저가 와인에는 흥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번 시음에 보통 5~6 종류의 와인이 적당하다.
▲브라인드 테스팅
와인은 브라인드 테스팅이 원칙이다. 와인병을 노란 봉지나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 레이블을 가린다. 그리고는 와인잔에 소량을 따라 마셔본다. 가격과 상표를 모르니 선입견이 사라질 것이다. 마셔본 회원들의 품평을 들어보고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와인을 투표한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좋아하는 와인도 틀릴 것이다. 왜 좋은지,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는지를 솔직하게 말하도록 한다. 특히 체리맛, 검은 과일맛과 같은 미국 교과서적인 표현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한국식 음식이나 분위기, 다시 말해 우리에게 익숙한 맛과 향을 기억하며 표현해도 좋다.
테이스팅이 끝나면 봉지를 뜯어 레이블을 보여준다. 이를 반복하면 어떤 와인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와인의 참맛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
▲‘Flight’
와인 시음에서 ‘Flight’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여러 와인을 소량 따라놓고 비교해 가며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Flight’는 ‘Vertical Flight’(우리말로 표현한다면 수직 시음)과 ‘Horizontal Flight’(수평 시음)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Vertical Flight’, 다시 말해 수직 시음은 동일 와인을 생산 연도별(빈티지)로 구입해 시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며 나파밸리 Hess Select 카버네 쇼비뇽 와인을 선정했다며 98, 2001, 2003, 2004, 2005 식으로 다른 빈티지를 구입, 시음한다.
‘Horizontal Flight’, 수평시음은 동일 포도품종과 생산 연도(빈티지)를 정한 후 다른 제품을 여러병 골라 시음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2003년 빈티지 카버네 쇼비뇽을 기준으로 Charles Krug, Sterling, Francisca, Cakebread 제품을 골라 시음한다. 이 외에도 카버네, 멀로, 시라, 진판델등 포도 품종별, 또는 국가별, 지역별 다른 와인들을 골라 골고루 맛보며 비교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
와인 클럽은 모임의 멤버가 중요하다. 와인 클럽이 다소 소셜 클럽의 성격도 띠게 되겠지만 와인을 벗어난 지나친 사회 이슈를 화두로 삼게 되면 금방 금이 가고 만다. 집을 샀는데 어쩌구 저쩌구 또는 고급 차를 샀는데 맘에 든다 어쩐다, 화두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거나 사회 이슈에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 회원은 경계해야 한다. 시기 질투는 편 가르기의 시발점이 되므로 모임이 조각나기 십상이다.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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