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모든 문제의 시작은 가정”

2007-04-24 (화)
크게 작게
본보, ‘제2의 버지니아 참사 막으려면… 한인고교생들과 e메일 좌담

“어른들은 몰라요. 자녀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교내 왕따 문제와 관련, 한인 청소년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가정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았다.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 형성이 이뤄지지 않는 학생들은 정서적 불안감과 스트레스로 학업에 집중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감을 잃어 또래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채 혼자 외톨이가 되기 쉽다는 것. 이는 본보가 뉴욕시내 고교 총학생회 임원으로 활동 중인 한인 1.5세 & 2세 청소년 5명과 e-메일 좌담을 나누면서 지적된 내용들이다.


헌터고교 총학생회장인 정경철(17·미국명 브라이언)군은 “언어적 한계가 있더라도 자녀들은 부모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며 “부모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와도 자녀가 행복해 하지 않는 가정이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되물었다. 특히 교내 왕따 문제에 있어 타민족이 한인학생들을 왕따 시키거나 괴롭히는 것보다는 오히려 1.5세와 2세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한인 청소년들 스스로 진단했다.

원만한 대화가 서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때로 오해나 긴장,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고 서로 왕따 시키는 분위기가 되기도 한다고.

프랜시스루이스 고교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임한나(17) 양은 “왕따는 은근히 자신들이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며 “타민족은 물론, 자신과 배경이 다른 1.5세 또는 2세 한인에 대해 서로 좀 더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인들끼리만 어울리는 태도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추구하는 미국 사회에 한 발 다가가는 적극성을 키우는 것만이 한인들의 사회성 결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한인가정의 자녀양육 방식에 대해서도 한인 청소년들은 “모든 문제를 푸는 해결의 열쇠로 가족의 사랑과 서로간의 대화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없다”며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는 가정환경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메일 좌담회 참석자
정경철(헌터고교 총학생회 회장)
이상현(카도조고교 총학생회 회장)
임한나(프랜시스루이스고교 총학생회 부회장)
김민정(베이사이드고교 총학생회 부회장)
박선혜(존바운 고교 한인학생회 회장)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한인학생들의 사회성 결여와 교내 왕따(Bully) 문제에 대한 지적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민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인학생들이 타민족은 물론, 언어·문화적 차이로 인해 심지어 같은 한인학생 그룹에서조차 서로 소외되고 있을 정도. 제2의 조승희 사건 예방차원에서 한인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의 핵심과 해결책을 한인 청소년들의 시각으로 짚어보고자 본보는 e-메일로 뉴욕 일원 고교 총학생회 임원으로 활동 중인 1.5·2세 한인학생 5명의 의견을 들어봤다.

■이번 사건에 대한 생각은?
정경철(17·미국명 브라이언·이하 정):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한 개인이 저지른 비극적인 사건이다. 인종문제를 거론할 사건이 아니다. 미국에 사과한 한국 정부의 처사는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사과해야 할 정부는 조승희가 자라난 미국이다. 그는 미국사회가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임한나(17·이하 임):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이처럼 무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김민정(17·이하 김): 만약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에 끔찍했다.
박선혜(17·이하 박): 사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었던 사건이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이상현(17·미국명 에릭·이하 이): 올 가을 대학 입학을 앞둔 예비신입생으로 앞으로 한인학생들의 앞날이 우려됐다.


■범인이 한인이었는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전원: 어느 한 순간도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없다. 범인이 한인이라는 점은 이 사건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가 전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 범인이 한인이라는 사실을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이 불쾌하긴 했지만 단지 범인과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만으로 전체 한인들이 죄인 취급 받을 이유는 없다.

■교내 왕따 문제의 심각성은?
정: 왕따는 어느 학교나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왕따는 성장하며 겪는 과정의 하나라고 본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친구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서로의 다른 점을 부딪치며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왕따가 있어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결코 근절되지도 않을 문제라고 본다.

박: 왕따가 물론 한인학생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인들은 물론, 타민족 학생들도 알게 모르고 스스로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임: 개인 또는 특정그룹을 완전히 소외시킬 수 있는 왕따는 심각한 문제다. 왕따는 더 큰 증오를 낳아 더 큰 범죄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특히 신규 이민자 학생들은 언어적·문화적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운 언어도 익혀야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일 등으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할 수 없지만 은연히 자신들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왕따가 생겨나는 것 같다.

김: 뉴욕시에는 특히 아시안이 많아 왕따가 심각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 사건 이후에도 한인 학생을 겨냥한 별다른 왕따 징후는 없었다.

■1.5세와 2세 한인 사이의 갈등은?
임: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한인학생들은 타민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난 학생과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 사이에 엄연한 선도 존재한다. 스스로 자신을 그룹에서 소외시키는 행위야말로 한인학생들이 지닌 가장 큰 문제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 미국의 멜팅 팟 속에 스스로 뛰어드는 자세가 요구된다. 서로 세대를 구분 짓는다 해도 어차피 모두 같은 뿌리를 지닌 한인이다. 다른 세대를 마친 외국인을 대하듯 해서는 안된다.

정: 1.5세 한인들은 한국어권 학생들과 어울리다보니 한국어가 부족한 2세들은 1.5세와 어울리기 쉽지 않다. 서로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전달하지 못하면서 틈새가 벌어지고 대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긴장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박: 언어적·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2세들은 자신의 뿌리와 역사를 알기 위해서라도 1.5세를 이해해야 하며 1.5세들은 2세들의 미국사회 경험을 통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서로 마음에 맞고 편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양성이 요구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겪어보는 적극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와 크게 생각하며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

■한인들의 사회성 결여에 대한 의견은?
박: 많은 한인학생들은 타민족 문화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다. 중국인 등 같은 아시안끼리도 서로 잘못된 편견을 마치 실제 모습이라 여기며 대한다. 영어를 사용할 때 실수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한인학생들 영어사용을 자제하면서 더욱 움츠러든다. 한인들끼리만 어울려 다녀 미국사회에 동화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김: 각자의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보다 활동적인 민족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약자는 언제나 왕따를 당하기 쉽다. 따라서 한인들도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해결책 제시는?
임: 타민족과 대화 창구를 늘려 타민족 문화에 대해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은 가장 비생산적인 행동이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불필요한 행동이다. 이 모든 출발점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청소년이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정: 각자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하다. 주변의 다양한 민족을 알아가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자신과 같은 언어, 같은 배경을 지닌 민족끼리 어울리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한인학생들은 타인종과 어울리는 기회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학교 클럽 활동 참여 등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박: 이민자 문제, 특히 청소년 이민자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단지 어릴 때 이민 왔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미국사회에 쉽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부모 세대에 바라는 점은?
정: 가족의 사랑과 지원만큼 자녀의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없다. 돈도 필요하고 우수한 학업성적도 중요하겠지만 자녀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무조건 아이비리그 대학을 강요하기보다는 자녀가 원하는 분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언어적 한계가 있더라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임: 많은 한인 부모들은 자녀에게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열쇠는 건강한 가정생활이다. 많은 돈을 벌어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데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 자녀는 더 큰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부모와 올바른 관계형성이 없다면 자녀들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또래와 어울리는 일도 원만치 않다. 대화를 나누며 자녀의 장단점을 파악해 최대한 그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기타 의견은?
전원: 이번 사건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인사회는 이를 거울삼아 배워야 할 것도 많다고 본다. 서로 하나로 뭉쳐 더 큰 힘도 키워야 할 것이다.

<정리: 이정은 기자>
A1.5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