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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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 기자 동행 르포 ‘셰리프 24시’

2006-10-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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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르포 1편/핼로윈 파티의 뒤안길


산타클라라 카운티 셰리프국(국장: Laurie Smith)의 협조로 쿠퍼티노 소재 셰리프국 서부지소(캡틴: Terry Calderone) 소속 한인경찰 릭 성 경관의 패트롤카에 동승, 10시간에 걸친 동행취재로 제작된 본 보도물은 총 3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PM 11:58 핼로윈의 서막
10월 28일 저녁 6시 ‘사고가 일어나도 법적 책임은 본인이 진다’는 내용의 각서에 사인을 한 후, ‘찰스 파이브’로 명명된 릭 성(Rick Sung, 34) 경관의 패트롤카에 동승한 지도 어언 6시간(전반부는 이후 소개). 교통법규 위반차량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그의 예리함과 신고를 받고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 시속 80마일로 현장을 향해 질주하는 스릴감에 젖어 정신없이 흘러갔던 시간도 슬슬 시들해지며 피로가 엄습해왔다.
현직 경찰과 함께 패트롤카에 동승한다는 것은 실감나는 3D 입체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아무리 ‘스펙터클 블락 버스터’라 할지라도 영화 3편을 쉬지도 않고 내리 본 셈이니, 피곤할 밖에.
이후에도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번 동행을 통해 경찰들의 노고란 상상 외로 크며, 무한한 체력과 인내를 요하는 일임을 체험할 수 있었다.
쿠퍼티노 스티븐스 크릭 선상의 한 주유소에 수상한 차량 한 대가 서있어 성 경관이 차량에 탑재된 스팟 라잇(Spot light)을 이용, 차량 내부를 살펴보는 동안 행여 근무 수행에 누가 될까 졸린 눈을 비비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언뜻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여성 2명이 주유소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학생복 차림이지만 미니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가 꽤나 도발적인 차림.
성 경관이 심히 걱정스러운듯 이내 그들 곁으로 차를 날렵하게 댄다. “이봐, 이 근처에 학교가 이제 끝났나? 학생들이 밤길에 이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한데” 그러자 그 중 한 백인 여성이 피식 웃으며 “학교? 우린 성인이야. 핼로윈 파티에 다녀오는 길이라구”
그러고 보니 핼로윈을 앞둔 토요일 밤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요즘 핼로윈 의상은 유령 캐릭터 보다는 섹시한 캐릭터가 유행이라더니… 본부와의 무전 교신시 상황의 해제나 종료를 뜻하는 ‘코드4’.
그러나 이는 핼로윈의 악몽, 그 서막에 불과했다.
☞ Tip: 밤길을 도보하는 이나 자전거를 타고 배회하는 이들은 경찰의 눈길을 끌기 쉽다. 물론 도보자나 자전거 이용자를 차별해서는 아니고, 아무래도 자동차문화가 발달돼 있는 문화적 특성상 유난히 눈에 잘 띠기 때문이다. 경찰을 의식해서라기 보다 각자의 안전을 위해 밤길을 배회하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타 지역에 비해 북가주가 상대적으로 강력범죄 발생빈도가 적다고 생각해 자칫 방심하기 쉬운데, 성 경관의 말에 따르면 실제론 좀도둑을 비롯해 마약 사범 등 강력범죄는 우리가 보도를 통해 접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건수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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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르포 ‘셰리프 24시’
(1) 핼로윈 파티의 뒤안길


6백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는 산타클라라 카운티 셰리프국은 산호세 본부 외에 쿠퍼티노와 길로이 인근 산 마틴에 각각 서브 스테이션(Sub station)을 운영하며, 쿠퍼티노, 사라토가, 로스알토스힐 등 자체적인 경찰국을 운영하지 않는 시들과 계약을 맺어 치안을 담당해 주고 있다. 이밖에도 셰리프국은 산호세 시 곳곳에 산재된 미합병지역과 산타크루즈로 넘어가는 힐 지역 등 각 시의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카운티 곳곳을 관장하고 있다. 본보는 이들의 활약상을 밀착 취재·보도함으로써, 경찰 업무에 대한 민간의 이해를 돕고, 아울러 독자들에게는 생활법률에 대한 정보를 제공, 밝은 사회 만들기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AM 12:35 빗발치는 신고
공식적인 휴일은 아니지만 “사탕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유별난 축제 기간인 핼로윈 시즌답게 밤 12시를 전후로 무전기는 각종 신고접수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성 경관의 말에 따르면 핼로윈부터 크리스마스에 이르는 연말이 경찰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라고 한다.
신고접수를 받은 본부로부터 수신된 내용들은 “집에서 키우던 개가 옆집으로 구덩이를 파고 넘어갔다가 무슨 영문인지 중상을 입고 돌아와 현재 동물병원에 와있는데 수의사가 생명이 위중한 상태라고 하니 진상을 조사해 달라”는 애절한(?) 사연에서부터 “집 근처에서 소녀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신고, “아이가 아직 집에 안들어왔다”는 실종신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일요일 새벽으로 접어든 시각, 산타클라라와 경계를 이루는 쿠퍼티노 서편 주택가에서 고성방가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으로 출동해 보니, 핼로윈 파티를 이제 막 끝내고 나온 듯한 한 쌍의 젊은 백인 남녀가 차 안에서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전기로 도착 보고를 한 후 문제의 차로 다가간 성 경관이 운전석에 앉아있던 남성을 내리게 한다.
한적하고 어두운 골목길이라 그런지, 커다란 해골 문양이 새겨진 가죽 옷에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페인트를 덕지덕지 뿌려놓은 핼로윈 의상이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이어 손가락을 이용해 눈동자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간단한 음주 측정 테스트가 실시됐다. 성 경관은 “경찰들은 눈동자의 흔들림만으로도 혈중 알코올농도 허용치인 0.08을 넘겼는지 아닌지를 점검할 수 있다”고 한다. 다행히 술은 조금 걸친 듯 하지만, 만취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판명돼 주의를 주는 수준에서 방면, 이 역시 ‘코드4’로 귀결됐다.
☞ Tip: 주택가에서 고성방가 신고가 들어왔을 경우, 고성방가가 발생한 해당 장소의 주인에게도 티켓이 발부될 수 있다. 특히 한인들의 경우 집에 노래방 시설들을 구비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이웃 주민의 신고로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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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1:13 반바지 차림의 경찰
스티븐스 크릭 100××번지, 집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번쩍이는 조명이 한 눈에 보기에도 안에서 핼로윈 파티가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파티장에서 막 나온 듯 그 앞의 차도를 점거한 채 정차를 하고 있던 백인 여성에게도 역시 음주 측정 테스트가 실시됐는데, 순간 검은 제복을 입은 낯선 경찰 한 명이 성 경관이 있는 방향으로 홀연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시에서 파견된 지원병인가?’ 의아해지는 순간 어둠 속에서 자세히 보니 웬걸, 경찰모와 상의는 어엿한 경찰임에 틀림없는데 밑에는… ‘어라, 반바지?’
음주 테스트를 받고 있던 예의 여성과 동행이었던 이 남성 역시 핼로윈 파티용 의상으로 경찰복을 입고 있었던 것. 수갑까지 찬 모양새가 제법 경찰의 구색은 다 갖췄다. 헌데 장난감처럼 보이긴 하지만 옆에 권총까지 차고있어 섬찟함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성 경관이 그를 향해 다가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들 역시 주의를 주는 수준에서 방면됐으나, 원칙적으론 경찰이 아닌 이가 경찰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불법행위다. 하지만 이 사람이 다른 목적으로 경찰인양 행세를 했다는 혐의가 없고 핼로윈 시즌임을 감안, 융통성이 발휘된 것이다. .
☞ Tip: 법은 준엄한 것이지만, 경찰의 업무 수행에는 어느 정도의 ‘관용(tolerance)’은 적용되기 마련이다. 이는 한국식 표현으로 ‘봐 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합리적 융통성이라 할 수 있는데, 경찰 개개인에 따라 그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성 경관의 경우 자신만의 한계선(에를 들어 속도 초과의 범위, 혈중 알코올농도 등)을 정해 놓고, 이를 위반하면 가차없이 법을 집행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적발을 위한 적발이 아닌 ‘민중의 지팡이’로서의 역할을 하자는 취지에선데, 그렇다고 ‘이 정도쯤이야 봐 주겠지’하며 방심하는 것은 금물. ‘관용’은 법을 준수하려는 의지의 테두리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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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1:52 하루 밤의 뼈아픈 실수
쿠퍼티노 사우스 디 앤자 블러바드 선상 1601번지에 위치한 셰리프 사무실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85번 사우스 방면 출구로 나오다 빨간 불인데도 불구하고 우회전 차선에서 멈추지 않은 채 진행한 한 차량이 성 경관의 레이다망에 포착됐다. 뒤로 접근해 보니 번호판을 비추는 점등도 나가있는 상태. 무전 보고와 함께 경광등을 점멸해 문제의 차량을 세운다.
성 경관이 뒤 번호판의 점등이 고장났음을 지적해 주기 위해 하차시킨 운전자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인 여성. 그러나 그녀 또한 젊은이 못지 않게 망사로 된 검은 상의에 금빛 반짝이 치마까지, 핼로윈에 어울릴만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성 경관이 뭔가 감지를 한 듯 이 여성에게도 손가락을 이용, 눈의 상태를 점검하는 테스트를 실시했다. 하지만 종전과는 달리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다리 들고 서기, 똑바로 걷기 등 다른 테스트들이 연이어 주문됐다. 이는 바로 혈중 알코올농도가 0.08 이상이라 판단됐다는 증표.
약 10분 가량 이어진 지리한 테스트 뒤에 성 경관은 확신을 한 듯 종국에서는 패트롤카의 뒤 트렁크에서 호흡 측정기를 꺼내 이 여성에게 불기를 권유했으나 그녀는 이를 끝내 거부했고, 성 경관은 할수없이 그녀의 손에 수갑을 채워 패트롤카 뒷좌석에 태운 뒤 산호세 다운타운에 위치한 카운티 교도소로 향했다.
카운티 교도소 뒤편에 위치한 음주 측정실로 들어서자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청년, 배우 의상의 아가씨 등 실내는 일대 핼로윈 파티장을 연상케 했다. 다만 그들 모두가 수갑을 차고 있으며, CHP 등 각지에서 이들을 체포해온 경찰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그 전까지는 짐짓 점잖게 행동했던 이 백인 할머니가 음주 측정을 실시하려던 성 경관에게 다짜고짜 “당신 일본인이지? 아니면 중국인?” 하며 질문을 던져온다. 그런 말 한적 없다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성 경관에게 다시 “그럼 대만인? 맞지?” 하며 추궁한다. 아무튼 그녀의 입에서는 끝내 “코리언 아니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는데, 아무려면 어떻겠냐만 절로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곳에서 다시 정식으로 실시한 호흡 테스트 결과는 역시 혈중 알코올농도 0.11, 그녀의 교도소 송치가 결정됐다. 성 경관이 패트롤카에 탑재된 랩탑 컴퓨터로 이 여성의 신원을 조회해 보니 티켓도 한장 없었던 건실한 이였는데, 하루 밤 기분 좀 내려다 오점을 남기는 실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 Tip: 음주혐의로 체포된 자는 일단 술이 깨는데 필요한 최소 5시간 이상 교도소 혹은 유치장에 감금된다. 또한 송치되기 전 호흡(Breath) 또는 혈액(Blood) 테스트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데, 경찰들이 소지해 다니는 간이 호흡 측정기의 측정결과는 공식적인 법정기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를 끝까지 거부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일종의 강제조항으로서 변호사의 입회 유무와는 별개로 거쳐야 할 필수절차다. 만일 이를 끝까지 거부할 경우에는 음주를 인정한 것으로 기록이 남게 될 뿐 아니라, 이에 승복한다는 종이에 사인을 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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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인 1.5세로 세리프국 경력 5년차인 릭 성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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