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2006-09-06 (수) 12:00:00
프랑스 파리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헌금(獻金)을 하는 시간이었다. 서양에서는 헌금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자기 형편 되는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은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헌금접시가 어느 맹인 앞에 멈추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할 수 없는 형편의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놓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하고 묻자 맹인은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저는 눈이 안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년에 27프랑이 든다는 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 빛이 비추도록 하고 싶은 거지요”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정신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또한 도전하는 삶을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점차로 깨우치는 것이며 우리 생의 길잡이는 영원한 ‘물음’의 연속이다. 인간은 수많은 역경 속에서 ‘무엇 때문에 그리고 왜 누구를 위하여 나는 지금 여기에 있나’하는 것을 수없이 자문하며 어둠 속 한줄기 빛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역경은 인생의 눈을 뜨고 깨우치게 하고 돌이켜 반성도 하게 한다. 늘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생명 있는 동물이라면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닌가.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는 것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빚을 갚을 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성경은 ‘너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이제 이민 1세들이 거의 은퇴시기를 맞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분들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매주 금요일 노인식사배달에 나서며 노인 아파트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어르신들은 물질의 도움보다 진한 노년의 외로움을 호소한다. 따뜻한 눈길과 말 한마디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이제는 우리도 시야를 넓혀 생명의 공동체에 참여하여 이웃과 따뜻한 정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면 더욱 값진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헌신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채수희/수필가